창립자의 말씀

예수님의 봉헌과 마리아의 봉헌을 요약하는 말

작성자 수녀회 조회조회 3,298

본문

NS 7
시련이나 위로에 무관심함. 사랑에게 모든 것은 한가지입니다. 마리아께서는 길거리를 청소하라는 명령도 하느님의 사자가 선포한 말씀과 같이 ‘여기 있나이다.’라는 한마디 말로써 평온하게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늘 생각합니다.
착복식 날 ‘수난의 마리아’라는 이름을 받을 때, ‘여기 있나이다.’라는 한마디 말이 내 마음 속 깊이에 새겨졌습니다. 그 말은 마리아의 봉헌과 예수님의 (올리브 산에서의) 고뇌를 요약한 말입니다. “제가 여기 있습니다.” 수난의 마리아가 되기 위해 제가 여기 있습니다.
나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작은 무리 중에 있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마리아의 수난이여, 제 마음을 꿰뚫으소서! (1882년 8월 26일)

1)  “여기 있나이다”라는 말은 본문에서
- 시련이든 위로든 무관심함(불편심-indifference:이냐시오 영성을 따르는 수도자로서 잘 양성받았다!)
- 이는 모든 것을 사랑을 위해서 하는 것.
- 마리아의 봉헌과 예수님의 고뇌(성모영보와 겟세마니는 마리 드 라 빠시옹에게 중요한 두 장소)
그러므로 어려운 순간이나 좋은 순간에나 지속되는 마리아의 내적 자세!

2) “여기 있나이다.” 라는 말은 자신의 착복식 때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 즉 마리 드 라 빠시옹은 인생의 가장 힘든 순간에서 자기 삶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가졌던 순간을 떠올리면서 힘을 길어낸다.
    마리 쟌다크의 전기에서 이 순간은 이렇게 묘사된다.
  “총장 수녀는 그녀에게 마리 드 라 빠시옹이라는 이름을 미리 주었으며, 이 이름은 즉시 이 열심한 청원자에게 소중한 이름이 되었다. ,,, 성모승천 축일에, 그녀는 착복식을 하였다. 지낙(Ginhac) 신부님이 이 예식에서 강론을 하였다. 모든 이를 휘어잡는 어조로 이 존경할만한 수도자는 말했다. ‘내 딸이여, 당신은 하느님께서 당신 자비하심으로 당신에게 주실 이 소중한 이름, 마리 드 라 빠시옹의 의미를 실현할 것입니다.’ 고통 당하는 것! 이것은 제물인 마리아의 신비스러운 길이 아니던가! 마리 드 라 빠시옹은 나중에 말한다. ‘그 당시 내가 죽을만큼 갈망하는 성모통고의 한 구절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오, 어머니, 사랑의 샘이여, 제가 당신의 고통을 느끼게 하시고, 당신과 함께 울게 하소서...’ ”
  비록 약간 낭만적인 분위기가 있기는 하지만 착복 때 마리 드 라 빠시옹에게 울려왔던 “엑체”와 “피앗”은 삶의 그 어느 순간에서도-지금과 같이 가장 어려운 순간에서도- 결코 포기되지 않았다. 고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우선 말씀과 같이, 그리고 마리아와 같이 엑체와 피앗을 발할 때 닥쳐오는 그 어느 것도 피하지 않겠다는 결심이다. 이 순간, 그는 다시 말한다. “여기 있나이다. 마리 드 라 빠시옹이 되기 위하여 여기 있나이다.”

3) 이러한 기도 끝에 그는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사랑하는 소수 중의 한 사람이 되기를 의도적으로 선택한다.(나는 원합니다.) 그것은 예수의 수난(Passion)과 마리아의 수난(passion)이 모두 열정적인 사랑(Passion)에서 비롯되었음을 잘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지금 자신이 당하고 있는 수난을 예수님의 수난과, 마리아의 수난과 일치하면서 그와 같이, 사랑의 결과로 승화시키고 있다.

4)  준주성법 제2권 11장 :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 천국은 많이 찾으나, 그 십자가를 지려는 사람은 적다. 그의 위안을 받으려는 자는 많으나, 어려움을 참아가려는 자는 적다. ... 그가 하신 영적은 존경하는 자는 많지만, 그 십자가의 모욕을 따르려는 자는 적다. ... 그러나 예수를 사랑하되 그를 위해서 사랑하고 무슨 위안이나 받으려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어렵고 고통이 심한 때라도 큰 위안을 받는 때나 다름없이 예수를 찬양한다. 예수께서 그에게 전혀 위로를 주시지 아니해도 그는 예수를 찬양하고 그에게 언제나 감사한다. 11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