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의지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 나를 이끄시기를...
본문
NS 9
하느님의 나라, 나는 그것을 마리아를 통해서 얻어낼 것입니다! ... 내가 너무나 갈망하는 이 나라 ...
하느님과 인간들의 마음을 앗아오기를 그토록 바라건만, 나는 내가 너무 혼자이고, 가난하다고 느낍니다. ‘어떻게 할까?’ 라고 내
영혼이 비명을 지릅니다.
갑자기, 마리아께서는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으셨다는 것이 떠올랐습니다.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마태 2,13) 라고 천사가 말합니다. 이, ‘데리고’라는 단어가 마리아께서는 아무런 의지도 없이, 단지 다른
이들이 하도록 내버려두었음을 말해줍니다.
그러므로 신부님, 나를 데리고, 하느님 나라를 구하기 위하여 당신이 원하시는 곳으로 나를 인도하십시오. 나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조차 묻지 않으렵니다.(1882년 8월 28일)
1) “하느님 나라”라는 단어가 4번이나 되풀이된다. “나”는 이 하느님 나라를 임하게 하고 싶은 갈망에 불타지만, 자신은
너무나 혼자이고, 무력하다고 느낀다. 갈망과 무력감이 함께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 하느님 나라를 마리아를 통해서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하느님 나라가 오게 하는 것은 이 글에서 “하느님과 인간의 마음”을 앗아오는 것이라고 표현되기도 한다. 그에게
하느님 나라는 외적인 무엇이 아니라 하느님과 인간의 마음에 관계된 것임을 알 수 있다.
2) 혼자이고 가난하다고 느낀다 : 갈망이 클수록 무력감도 크다. 이 무력감이 얼마나 큰지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비명이
나올 정도이다. 아마도 지난 5년간 겪은 모든 어려움 중에 이같은, 비명과도 같은 질문을 수없이 던졌을 것이다.
3) "갑자기 ....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기도 중에 흔히 받는 영감이지 않은가! 이 순간 그에게 이 영감은 복음에서
보이는 마리아의 삶에서 왔다. “데리고”라는 간단한 말에서 그는 마리아께서 자기 혼자 의지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으며, 오직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자신을 내어놓았음을(se laisser faire) 주목한다. 마리아께서 하느님 나라가 임하는데 있어
기여를 했다면 그것은 그분이 무엇을 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자신을 내어맡김으로써였다. 마리 드 라 빠시옹은 여기에서 하느님
나라에 대한 자신의 갈망을 이루는 것은 무엇을 함으로써가 아니라 상황과 사람과 사건이 알려주는 하느님의 뜻에 자신을 내어놓음을
통해서라고 통찰한다. 활동과 관상이 구분되지 않는 우리 카리스마의 선교적 특성이 이렇게 숙성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4) 첫 단락에서 갈망에 비해 무력한 자신의 처지에 답답해했고, 둘째 단락에서 마리아의 모범에서 힘과 영감을 받았다면,
이제 그 영감은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자신도 역시 마리아처럼 하느님의 뜻을 대리한 신부님께 대한 순명을 결심한다. 어디로 가는지
조차 묻지 않는, 그의 순명이 하느님 나라를 위한 것임을 정확히 의식하고 있다.
5) 전체적으로 이 기도는 하느님 나라에 대한 갈망, 자신의 무력감, 그러나 마리아의 모범에서 영감을 받은 후, 마리아처럼
하느님의 뜻이 하시도록 내어드리는 것과 절대적인 순명을 통해서 하느님 나라를 오게 하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진다. 영적 지도자가
없어서 어려웠던 당시 마리 드 라 빠시옹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 절대적 순명에의 절실함을 더욱 이해할 수 있겠다. 이 시기 그는
영성생활의 한 중요한 단계인 “놓아버림”(letting go, lache prise)를 겪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