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S 147 사랑과 희생에 대한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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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 147
사랑과 희생에 대한 묵상. 강생과 구속은 원래 사랑(의 계획) 안에 존재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죄가 세상에 들어온 후 강생과 구속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모든 것이 그러하듯, 질서의 당연한 결과가 되었습니다.
나는 이 아름다운 영상을 다시 보았습니다. 인간은 죄로 인하여 자신을 우상화하고 자기를 흠숭합니다. 하느님의 어린양은 땅의
우상숭배 대신에 하느님을 흠숭하십니다. 이는 사랑으로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죄를 통해서는 땅 위의 모든 것이
우상을 찬양하지만, 하느님의 어린양을 통해서는 모든 것이 하느님을 흠숭하고 사랑과 희생을 찬미 노래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점점 더
커지시고, 나는 점점 더 작아져야 합니다. 모든 성인들은 이를 그들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우상을 파괴하는 일은 하느님께 참된
흠숭, 즉 사랑과 희생을 드리는 것입니다. 신부님, 아름다운 빛 속에서, 그건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이 모든 것을 본 후에,
이제는 죽어야할 것 같습니다. (1884년 4월 7일)
- 강생과 구속의 신비는 원래 사랑의 계획 안에 있었다. 그런데 원죄를 범함으로써 그것은 사랑의 질서에 따른 필요가
되었다는 말이다. 둔스 스코투스가 원죄가 없었다 하더라도 하느님의 육화는 있었을 것이라고 하면서 육화의 의미를 강조한 것을
상기시킨다. 애초 하느님 사랑의 계획은 피조물을 친교 안에서 당신과 일치시키시려는 것이다. 죄라도 하느님 사랑의 계획을 바꾸게
하지 못했다.
- 구원 : 하느님 흠숭, 사랑으로 자신을 희생함, 하느님의 어린양을 통해 모든 것이 하느님을 흠숭하고, 사랑과 희생을
찬미 노래함, 하느님이 커지시고 나는 작아지는 것. 우상을 파괴하는 것, 하느님께 참된 흠숭을, 즉 사랑과 희생을 드리는 것.
죄 : 지상의 우상들을 찬양하는 것.
프란치스칸 사상에서 죄란 하느님으로부터 눈을 돌려 하느님의 자리를 피조물에게 내어주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이 하느님의 것이
되는 대신, 자신을 포함한 피조물에 소유됨으로써 하느님을 거절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죄의 반대는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알아뵙는
것, 하느님께 눈길을 돌리는 것, 하느님을 향하는 것, 즉 흠숭과 사랑을 드리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각자나 이웃의 죄에 대한
적절한 반응은 단죄나 절망이 아닌, 하느님을 향한 사랑, 희생, 흠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