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자의 말씀

NS 112 고행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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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 112
우리 세라픽 사부님의 고행에 대해서.
오늘은 묵상을 ‘수행’했습니다. 매우 피곤했습니다. 이 가난하고 병든 몸뚱이가 매순간 부서지는 듯, 너무나 힘이 없어서 규칙 자체가 하느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가장 우선되는 고행같이 여겨졌습니다. 그런 다음 온유한 인내 - 예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모든 것에 대하여. 나는 좋으신 하느님과 아주 일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초자연적인 이러한 상태에서 나를 거의 이 땅에서 떠나게 했던 이 깊은 일치의 상태가 - 바라건대 - 내게 달려있지 않음을 명확히 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결심! 이 온유한 인내, 규칙에 대한, 그리고 피정 때 한 결심에 대한 충실. (1883년 9월 28일)

당시 고행은 수도생활의 일부였다. 주기적인 편태와 단식, 금욕 등이 수덕생활의 한 방법으로 권장되었다. 이날 마리 드 라 빠시옹은 너무나 쇠약하고 아파서 묵상을 하기조차 힘들었다. 그래서 묵상을 “수행”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에게 가외의 고행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도 규칙에 성실하려는 노력 안에서 그는 고행에 대한 의미를 발견해나간다. 이 기도에서 고행은 단순히 편태나 단식 등이 아니라 더 나아가 규칙에 대한 충실성, 예수님을 기쁘게 해드릴 모든 것에 대한 인내(그것도 온유한. 즉 고통을 평화롭게 받아들이는 능력 말이다. 참된 기쁨에서는 이 인내야말로 참되고 완전한 기쁨의 표시이다.)로 확장된다, 그리고 이러한 고행은 하느님과의 일치에로 이끈다.
또한 마리 드 라 빠시옹은 고행의 위험에 대해서도 의식한다. 즉 고행을 하고서 마치 그것으로 하느님의 은총을 얻을 자격을 얻은양 간주하려는 인간의 태도 말이다. 인간의 행위가 아무리 위대하더라도 그 자체로 하느님의 은총을 얻어낼 가치가 없다. 하느님의 은총은, 하느님과의 참된 친교를 가져오는 것은 근본적으로 인간에게 달리지 않은, 순수한 하느님의 선물이다.
마리 드 라 빠시옹은 육체적으로 힘든 상황에서도 규칙에 대해 충실하고, 이러한 상황을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것이라 인내롭게 받아들이면서 하느님과의 깊은 일치를 체험했다. 그리고 이러한 일치가 자신의 행위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의 순수한 선물임을 명료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가 이 기도의 마지막에 한 결심은 순수하게 주시는 하느님의 선물에 대한 감사의 표시이자, 그 하느님 선물에 대한 인간으로서의 응답 자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