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자의 말씀

NS 113 대화 중에... 미사 중에...

작성자 수녀회 조회조회 4,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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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 113
어제 누구와 대화를 나누던 중에 나는 예수님께서 우리 생활에 아무것도 아닌 아주 작은 것에서 우리를 찾고 계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찾으시는 예수님과, 그 예수님을 만나 뵈올 때 우리의 경탄이 어떠할지를 보았습니다. 이 영상은 폐부를 찌르는 불꽃과 같았습니다.
신부님, 오늘 아라첼리는 세라핌 천사들이 떠다니는 사랑의 물결의 작은 일부 같았습니다. 아마도 한 방울보다 작았겠지요. 그러나 그 한 방울만으로도 이 지상에서는 벌써 천국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이걸 잘 설명드릴 수 있을는지…. 아, 내가 얼마나 열심히 기도했는지요! 교회를 위해 어떤 은총이라도 얻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향해 두 손을 쳐들고 있는 나를 보시며 사부 성프란치스코께서 참으로 만족해하시는 듯했습니다. 오! 주님의 기도나 하느님의 어린양이 얼마나 아름다웠던지요! 오, 사랑이시여! 그렇게 기도할 때 사람은 조금이나마 죽음을 경험하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께서 내가 본 것을 보여주시고, 내가 맛본 것을 맛보게 하신다면 누구든 지혜롭고 착하게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1883년 10월 4일)


마리 드 라 빠시옹이 오늘 기록한 것은 기도 중에만 받은 것이 아니다. 누구와 이야기하던 중에 일상의 작은 것 가운데에서 인간을 찾으시는 예수님을 보고, 우리가 그러한 예수님을 만날 때의 경탄스러움도 체험했다. 창립자가 하느님의 빛을 받은 또 다른 장소와 때는 아라첼리에서 성프란치스코 대축일 미사 중이었다. 그러니까 이 글의 마지막에 표현되었듯 하느님의 사랑을 “보고, 맛보고”하는 일은 일상 속에서, 미사 속에서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찾고 계시다고 할 때, “찾다”고 번역한 Rechercher라는 동사는 단순히 찾는 것보다 노력과 애를 써서 찾는다는 의미가 붙는다. 예수님은 인간을 온갖 애를 써서 찾고 계시며, 인간을 찾기 위해서 자기 자리, 입장을 기꺼이 떠나고, 버리고 인간에게 다가오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강생이요, 하느님의 선교가 아니던가! 인간이 이러한 예수님을 발견할 때, 볼 때, 그 유일한 반응은 경탄일 뿐이다. 우리를 찾아나서시는 예수님을 인식하는 것, 그 예수님을 우리 역시 찾아나서는 것(우리 자신의 자리를 떠나서, 버리고서), 그리고 그러한 여정 중에 장애가 되는 것들을 멀리하는 것. 이 세 단계를 거쳐야 우리는 그분을 “보고” “맛보”는 단계에 이를 수 있다. 마리 드 라 빠시옹이 이 글에서 사용한 동사가 유달리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것이 많음을 유의하자.(보다, 맛보다, 찾다, 손을 내밀다,...)

마리 드 라 빠시옹이 “보고 맛본” 것은 무엇인가? 우선 우리를 찾는 예수님이요, 그 예수님을 만나게될 때 우리가 느낄 경탄이다. 또한 폐부를 찌르는 듯한 불꽃이며 천사들이 떠다니는 사랑의 물결이다.
  마리 드 라 빠시옹이 이렇게 대화 중에, 그리고 미사 중에 관상한 바는(보다, 맛보다) 마리 드 라 빠시옹에게 감정적, 의지적 변화를 가져왔다. 경탄하는 자세, 불꽃이 폐부를 찌르는 듯한 인식, 천국과 같은 행복감, 프란치스코께서도 기뻐하시는 듯한 흐뭇함, 지혜롭고 좋은 사람으로 변모하는 체험(자신의 노력이 아니라, 하느님이 보여주고, 맛보여주신 것의 자연스러운 결과) 등이다. 이 관상이 허상이 아니라 진정한 것임을 보여주는 변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