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자의 말씀

NS 123 하느님의 사랑이 인간이 되시고, 십자가를 원하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작성자 수녀회 조회조회 4,837

본문

NS 123
묵상 때 특별히 “구름은 의인을 비 같이 내리게 하라”라고 기도했습니다.
예수님은 살아 있는 복음이시고 복음은 예수님이시며, 하느님을 우리 영혼 안으로 다시 모셔들이는 지식이며, 지극히 아름다운 속성들을 반사하는 인성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스스로 자족하시며, 이 세상 모든 것을 초월하는 분이심을 얼마나 아름답게 보았는지를 설명하기란 아주 어려울 것입니다.
또한 내 어머니이신 가난이 어떻게 하느님 안에서, 그리고 복음 안에서 그 절대적인 아름다움으로 가장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것인지도 보았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의 속성을 너무나 아름답게 보았으며, 복음이 이 비할 데 없고 한계도 없는 아름다움에 대하여 내게 거듭 말하고 있음도 보았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 “하느님 당신 안에서 고통에 대한 사랑을 찾아볼 수 있을까요? 예수님 안에서, 예. 복음 안에서, 예. 그러나 당신 안에서 그것이 가능합니까?”라고 여쭈었습니다. 그러자,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지만 지극히 완전하신 하느님의 사랑이 죄가 존재하는 것을 보시고 십자가에 대한 갈증을 느끼셨으며, 인간이 되시고 십자가를 원하시기에 이르기까지 사랑하셨음을 보았습니다. 이 빛이 얼마나 눈부시고, 나를 꿰뚫는 듯 느껴졌는지, 나를 압도했는지 말로 하기란 불가능합니다.
내 결심은, 세상이 너무나 모르고 있는 이 복음의 정신, 의인이 내 안에 임하시게 하는 것입니다. (1883년 11월 19일)

- 모든 것을 초월함, 지극히, 절대적인... 등의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감춰진 신비가 인간에게 드러날 때, 인간이 조금이라도 인식하도록 허용될 때, 장엄함, 놀라움, 절대 등의 느낌을 주게된다. 이러한 신비는 인간의 어떤 이해능력이나 언어를 초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리 드 라 빠시옹은 여기서 하느님 자신의 신비를 관상하고 있으므로 설명할 수 없다, 말할 수 없다... 등의 말을 자주 하고 있다. 

- 이 기도에서
    예수님: 살아있는 복음, 하느님의 아름다운 속성을 간직하시고, 드러내시는 인성.
    복음: 예수님, 영혼 안에 하느님을 다시 모셔들이는 지식. 이 복음은 내게 비할 데도, 한계도 없는 아름다움에 대해 거듭 말해준다.
    하느님: 스스로 자족하시는 분, 지상의 모든 것을 초월하시는 분.

- 의인, 복음정신, 예수님 이 모든 것은 인간 안에 하느님을 다시 모셔들이는 지식이다. 하느님은 자족적이시며 모든 창조물을 초월하시며, 지극히 아름다우신 존재이시다. 그런데 왜 십자가가 있는가? 고통이 있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마리 드 라 빠시옹은 던졌던 것 같다. 복음에서 예수님의 삶을 볼 때, 거기에서 마리 드 라 빠시옹은 고통에 대한 사랑을 본다. 그런데 하느님, 자족하시며 초월적인 분께서 왜 고통을 사랑하시는 듯 보이는가? 그에 대한 답을 마리 드 라 빠시옹은 하느님 자신의 속성- 즉 하느님이 완전한 사랑이시라는 것에서 찾았다. 하느님은 완전한 사랑이시므로 죄가 존재하는 것을 보고서 그대로 있을 수 없으셨다는 것이다. 죄가 인류를 당신 자신에게서 분리시키는 것을 보시고, 인간이 되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사랑하심으로써 그 죄를 극복해주시고자 하셨다는 것이다. 세상에 고통이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이렇게 하느님이 사랑이시라는 통찰로 답을 얻었다. 이것이 마리 드 라 빠시옹의 마음을 만족시켰기에 복음정신, 곧 하느님을 자신 안에 임하시게 하고자 결심한다. 하느님이 자신 안에서 사랑하시도록, 그러기 위해서는 하느님이 사랑하시는 방식인 자기비움(자신을 비우시고 인간이 되심)과 그 결과인 십자가까지도 감수하겠다는 결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