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자의 말씀

NS 132 세상을 위한 제병이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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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NS 132
(예수님의 세례)
우리를 위해 세 가지 세례를 받아야 하셨던 거룩하신 어린양을 다시 보았습니다. 그분은 죄 많은 인성을 취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이 인성마저 벗으셨습니다. 사랑께서는 성체가 되기까지 하셔야 했습니다. 나는 죄로 인하여 파괴된 질서를 바로잡도록, 즉 하느님은 하느님의 자리에, 인간은 인간의 자리에 놓는 법을 가르쳐 주시고, 또 그 방법도 주시기 위하여 오신 거룩하신 제물의 자기 소멸 앞에서 하늘이 다시 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신부님, 나는 여기에서 아주 찬란한 빛을 봤습니다. 이 빛을 보기에 나는 부당하지만 단 한 줄기 빛일지라도 나보다 더 훌륭한 영혼의 온 생애를 기쁨으로 채우기에 충분하리라 생각했습니다. 나는 제병(hostie)의 성소란 다름 아닌 제물자의 성소임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제물자는 인류의 잘못을 짊어지고서 자기 소멸에 이르기까지 나아갑니다. 그럴 때 하늘은 다시 한 번 열립니다. 예수님께서 제물자 안에 계시고 제물자로 인해 성령이신 사랑께서 이 땅 위로 내려오십니다. 그리고 성부께서 말씀하십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우리 세라픽 사부에게도 이와 비슷한 놀라운 일이 일어났음을 모두들 알고 있으며, 나 또한 보았습니다. 그리고 사랑께서 본성에는 너무나도 힘겨운, 그러나 사랑으로 가득 찬 이 길에로 나 또한 이끌어들이심을 느꼈습니다.

세상을 위한 제병이 되는 것, 특히 이 가련한 사제들을 위한 제병이 되는 것. 그리하여 그들이 자신의 성소에 합당하게 되어, 그들 역시 자기 백성들을 위한 제병이 되게 하는 것. 내가 내 제병의 성소를 원한다면 이르든 늦든 나 역시 하늘이 다시 한 번 열리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만일 충실하다면, 내 딸들 역시 나를 도와줄 것입니다. … 내 결심은 나 자신을 비울 용기가 없다면, 그것을 잘 아시는 예수님께서 스스로는 찾을 용기가 없는 그것을 내려주십사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1884년 1월 4일)


첫째 단락 : 예수님 세례의 의미를 세 단계에서 찾고 있다. 즉 죄많은 인성을 취하신 것(육화), 이 인성마저 벗어버리신 것(십자가 죽음), 성체가 되신 것. 육화와 파스카, 성체의 신비를 인류에 대한 사랑으로 인한 “자기비움”의 지속적인 운동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비움의 이유는 오직 하나, 죄로 인해 허물어진 질서를 다시 회복하여 하느님은 하느님의 자리에, 인간은 인간의 자리에 두기 위함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기비움이 바로 하늘이 인간을 향하여 열리게 한 핵심이다. (필리 2,5-11의 운동)

둘째 단락 : 마리 드 라 빠시옹의 기도에서 예수님의 이 모범은 곧 제물의 성소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인류의 잘못을 짊어지고 자신을 비움으로써 하늘을 다시 열리게 하는 것. 이 지점에서 성체적 삶(제병의 성소)과 제물의 성소, 거기다 전교의 성소(인류에게 하늘이 열리고 제 자리를 찾게 하는 것)가 합치된다. 제물의 성소는 예수님의, 제물성소에 예수님과 함께 참여하라는 초대이다. 예수님처럼 인류를 위하여 인류의 잘못을 짊어지고 자기를 비울 때 제물자는 예수님처럼 하늘을 다시 열리게 할 수 있다. 즉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인류 가운데, 자기 안에 현존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길은 본성으로는 무척 힘이 들지만 그 깊은 기쁨으로 한 인생을 가득 채울 수 있다. 제물자 성소란, 이 기도에 따르면, 인류의 죄를 짊어지는 것, 즉 인류와의 연대성을 갖고 사는 것이고, 자신이 가진 것을 다 내어놓을 뿐 아니라 자신을 비우는 정도까지, 즉 존재적 차원에까지 내어주는데 까지 이르러야 한다. 그 결과는 하늘이 다시 열리게 하는 것, 즉 우선 예수님이 자신 안에 거하고, 성령께서 이 땅에 내려오게 하고, 성부의 사랑받는 자녀가 되는 것이다. 

세 번째 단락 :  이러한 통찰을 하면서 성프란치스코의 삶을 보자 성프란치스코 역시 이러한 의미의 제물자였음을 깨닫는다. 한 인간이 예수님과 일치하여 인류를 위한 제물이 되는 것은 그 인간 자체를 삼위일체와의 특별한 관계를 맺는 이로 변모시키는 힘이 있는데, 성프란치스코에게서 이러한 “놀라운 일”이 일어났음을 이해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변모의 과정은 자신을 비워야 가능하므로 본성에게 있어서 힘겨운 일이 아닐 수 없지만, 동시에 사랑으로 가득찬 과정이기도 하다.

마지막 단락은 자신의 성소가 이 제물의 성소임을, 세상을 위한, 특히 사제가 자신의 성소에 합당하게 되어 그들 스스로가 그들 백성들의 제물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제물임을 확신하면서, 이 개인 카리스마에 자매들을 합류시킨다. 마리 드 라 빠시옹이 그러하듯, 그의 카리스마를 나누어 받은 우리 역시, 우리가 충실하다면, 이 제물의 성소에 한 몫을 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을 비우는 한없는 겸손 가운데에서도 세상을 위해 하늘을 다시 열리게 할 수 있으리라는(당장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확신으로 이 기도는 끝맺는다.

결심은 본성이 무서워 감히 청할 수 없는 것을, 그것을 잘 아시는 예수님께서 주시라고 기도하겠다는 것인데, 감성으로는 떨지만 의지로는 이 제물의 성소에 충실하겠다는 결의가 잘 드러난다. 한 마디로, 이 기도는 우리 제물자 성소가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