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자의 말씀

NS 139 인류는 사랑 앞에 고개를 숙입니다.

작성자 수녀회 조회조회 4,111

본문

NS 139
예수님께서 내 영혼에게 보여주신 것을 잘 설명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내 아름다운 성삼위, 존재 자체이신 분의 현현(顯現), 타락한 인류에게 마땅히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께 돌려드리는 것을 가르치기 위하여 육화하신 말씀. 바로 이분이 지상에 사랑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나는 이 사실을 보지만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분은 하느님이시며 동시에 사람이십니다. 사랑이 인류 안에 계시며, 이때부터 사랑께서 신인(神人)의 인격 안에서 자유로이 활동하십니다. 그분은 당신이 원하는 대로 가져가기도, 주기도 하십니다.
그리고 인류는 자신의 목적인 하느님 외에는 모든 것을 가져가실 수 있는 이 사랑 앞에 고개를 숙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께서 예수님을 높이기도, 짓누르기도 하는 까닭입니다. 이것이 또한 사랑의 어린양께서 영광중에서와 마찬가지로 십자가에서도 당신 아버지와 일치해 계신 이유이기도 합니다.
바로 여기에 성덕의 활동이 있습니다. 즉 하느님께서 당신의 왕권을 온전히 자유롭게 우리 위에 행사하시며, 하느님만을 조배하는 우리 영혼이 흔들리지 않고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주시거나 또 빼앗아 가실 수 있는 것 말입니다.
그런 뒤 나는 제1 계명의 황홀한 빛을 보았습니다. 하나이신 하느님만을 흠숭하고 온전히 사랑하라. 내가 보는 것을 그대로 실현하기를 얼마나 바랐는지요! 거룩하신 사랑께서 당신 뜻을 내 안에서 이루시기를, 그분이 거두어 가고자 하는 것의 상실이 나를 흔들지 않고, 그분이 주실 때 흥분하지도 않으면서 말입니다. 사랑이 사랑의 자리를 차지하시기 위해서는 자유롭게 주실 수도, 당신 아닌 모든 것을 빼앗아 가실 수도 있어야 합니다. 나는 여기에 내 세라픽 사부의 모든 성덕이 있으며, 참된 행복의 비결도 있음을 봅니다. (1884년 1월 28일)

예수님께서 나에게 보여주신 것은 무엇인가? 나의 아름다운 삼위일체, 말씀, 존재 자체이신 분의 현현이시다. 이분은 또한 하느님이신 인간, 인간이신 하느님, 즉 신인(神人)이자, 사랑이시다. 마리 드 라 빠시옹이 기도 중에 체험한 하느님을 설명하기 위하여 쓴 이 호칭들에서 마리 드 라 빠시옹에게 중요했던 하느님의 특성을 알 수 있다.

존재 자체이신 분의 현현이신 말씀은 무슨 역할을 하셨는가? 그분은 타락한 인류에게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께 돌려드리는 법을 가르치기 위하여 육신을 취하셨다. 그분은 이 지상에 사랑을 가지고 오신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이자 인간이 되셨다. 그럼으로써 이 신인(神人) 안에서 사랑이 온전히 자유롭게 행하실 수 있게 되었으며, 인류 안에 사랑이 현존하실 수 있게 되었다. 말씀의, 인간과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 하느님이신 사랑께서 말씀 자신과 인류 안에서 온전히 자유롭게 하느님이 되실 수 있도록 해드린 것이다.
  사랑께서는 온전히 자유롭게 예수님을 높이실 수도, 짓누를 수도 있으시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와 마찬가지로 십자가에서도 성부께 일치되어 있는 이유이다. 그리고 예수님 덕분에 인류 또한 하느님 외엔 모든 것을 가져가실 수 있도록 사랑 앞에서 고개를 숙인다.

하느님께서 하실 수 있도록 완전히 열려 있는 것, 이것이 성덕의 활동이다. 다시 말하면 하느님께서 온전히 자유롭게 우리 안에서 당신의 왕권을 행사하실 수 있도록 자유를 드리는 것이다. 그 결과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이 주고자 하시는 것을 다 주시고, 흡족케 하시는 것이다. 이렇게 영혼은 불안하지 않고도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참된 성덕은 우리가 무엇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완전한 자유를 드리는 것, 우리에게 있어, 또 세상에 있어서 하느님이 다스리시도록 해 드리는 것에 있다. 이것이 마리 드 라 빠시옹에게는 하나이신 하느님을 흠숭하고 온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라는 제1계명의 의미이다. 마리 드 라 빠시옹은 이 계명을 글자 그대로 실현하고 싶은 갈망에 사로잡혔는데, 그것은 곧 하느님의 빼앗아가실 때 흔들리지 않고, 주실 때 흥분하지 않는 것, 모든 것에서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드리는 것이다. 마리 드 라 빠시옹이 이해한 프란치스코의 가르침인 참된 마음의 가난, 참된 행복의 비결이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