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자의 말씀

NS 108 길속의 길이신 마리아

작성자 수녀회 조회조회 5,133

본문

NS 108
사랑의 빛살 그 단 한 줄기도 지닐 수 없는 인류의 무능력을 봅니다. 하느님과 인류 사이에 끼어든 지옥이 이 땅의 옆구리를 꿰뚫기는 불가능합니다. 말씀이시며 지혜께서 길을 내실 것입니다. 그분께서 그렇게 열려진 당신 길을 통해 다시 한 번 지상에 사랑을 전해주시고 반사해주셨습니다. 당신 길 밖에서는 여전히 하느님과 인류 사이에 지옥이 서 있습니다. 말씀이 자신을 낮추시고 그분의 지혜, 그분의 권능이 그 자체로 인하여 이 지상의 불행을 가져온 자애심을 없애기 위해 하실 수 있는 끝까지 가실 수밖에 없으셨습니다. 십자가가 언제까지나 서 있음을 봅니다. 언제까지나…, 죽음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은 땅에서 하늘로 오르는 길을 남겨주셨습니다. (혹은 ‘길로서 머물러 계십니다.’가 낫겠습니다.) 사랑은 이 길에서 그 광채를 발하고 있습니다! 오직 이 길에서만. 그런데, 이 길은 바로 자기 소멸입니다. 이 길에서 따로 떨어진 이들은 거룩한 불꽃을 전혀 반사하지 못합니다. 그 반대로 우리가 예수님의 자기 소멸에 가까이 있으면 있을수록 우리는 더 진복의 기쁨 가까이에 있게 됩니다. …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이 길 바깥에는 지옥이 있을 뿐입니다! …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어떤 영혼을 십자가에 못 박으신다면 그분은 더 그 영혼을 영광스럽게 하시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예수님은 영혼을 하느님과 직접적인 관계에 놓아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세상의 것을 낮추시고 하느님의 것을 올리셨습니다! 티 없으신 마리아! 누가 그분처럼 십자가에 가까이 계십니까? 우리 육신의 눈에는, 예수님께서 이토록 고통을 받으시는 것을 보는 것이 예수님보다 더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아무튼 실제로 그렇지는 않지요. 예수님 다음으로, 티 없으신 백합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수난의 꽃입니다. 내게 있어 마리아는 길 속의 길과 같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의 심연 같은 것(말로는 이 이상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심연이 예수님을 통해 내게 오고, 이는 마치 마리아를 통하여 나의 가련함이 사랑의 대양을 건너가는 것과 같습니다. (1883년 8월 21일)

제1단락: 인간 스스로는 사랑할 능력이 없다. 인간과 하느님 사이에 지옥이 서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육화로 인간과 하느님 사이에 길을 내셨다. 그리고 이 길 밖에는 지옥이 있을 뿐이다. 인간은 이 땅의 옆구리(십자가에서 창에 찔린 예수님의 옆구리를 비유하는 것 같다.)를 꿰뚫을 능력도 없다.

제2단락: 필리비서 2, 11절의 케노시스 찬가를 생각나게 하는 단락이다. 말씀이자 지혜께서 길을 내셨다. 이 땅에 다시 한번 사랑을 전해주시고, 사랑을 반사해주시고, 다시 하느님께로 오르는 길을 내시기 위해서이다. 당신이 지혜이자 권능 자체이시기 때문에 이 자기비하, 육화는 끝까지, 즉 당신 자신을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갈 수밖에 없었다.

제3단락 : 예수님이 육화로 내신 이 길은 비움의 길이요, 십자가의 길이다. 이 길에서 떨어지면 거룩한 불꽃을 반사할 수도 없으며, 지옥일 뿐이다. 이 길에서 가까이 있으면 있을수록 진복의 기쁨을 느끼며 하느님과 직접적인 관계에 놓이게 된다. 예수님은 세상(의 죄)을 낮추시고 하느님이 비전을 올리셨기 때문이다.

마지막 단락 :  마리아는 이 길에서 누구보다 더 가까이 있기에 가장 복되고 아름다운 분이다. 그리고 길 속의 길이신 마리아를 통해서 나 또한 사랑의 심연, 사랑의 대양에 접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