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자의 말씀

NS 109 성체 안에 계시는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

작성자 수녀회 조회조회 5,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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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 109
성체 안에 계시는 온유하시고 겸손하신 예수님.
오! 신부님, 지난해부터 성체의 수난에 대해 얼마나 많이 기도해 왔는지요! 거룩하고 순결하신 성체(Hostie)께서 제게 큰 빛이 되고 너무나 생생한 사랑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1882년 피정 중이었습니다. 오늘 기도 중에도 얼마나 달콤한 기쁨을 누렸던지요!
나는 다시 한 번 삼위이신 하느님의 찬란한 아름다움을 보았습니다. 이 찬란함은 제 생각에, ‘지옥’이라 여겨지는 장애물로 인해 이 땅에서는 숨겨져 있습니다. 말씀께서 이 장애물을 뚫으시고, 육화를 통하여 인간의 육신 안에 자신을 비우셨으며, 더 나아가 십자가 위에서 인성마저 비우셨습니다. 인성이 비워지자마자 인류는 하느님을 다시 뵙습니다! 사랑이 다시 한 번 인류 가운데 계십니다! 성체는 이 모든 신비가 영원히 지속되는 것입니다! 인간 육신 안에서 자신을 비우신 분은 말씀이시며, 십자가에서 비우신 것은 그분 인성입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땅으로 오신 분은 사랑이시며, 땅에서 하늘로 가신 분도 사랑이십니다. 오! 신부님, 모든 신비가 여기에 있습니다.
참된 행복을 보기를 이토록 갈망하는 내가 이 아름다운 보화를 보면서 어떻게 자신을 죽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 예수님의 가장 큰 행복이자 가장 큰 승리, 그것은 희생의 성체(Hostie)가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제병(hostie)이 되면 될수록 더욱 더 그분의 행복과 승리를 나눠 갖게 됩니다! 그래서 마침내, 십자가의 희생제사에서 큰 몫을 나눠 가질수록 성체(Hostie)의 신비에 더 큰 몫을 차지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부님, 이 피정 후에 나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사랑의 겸손과 겸손에 대한 사랑을 지녀야겠습니다. 성체의 신비에 일치하기 위해 십자가의 희생제사에 나를 바쳐야 합니다.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과 함께 거룩하고 순결한 제병(hostie)이 되기 위해서! (1883년 8월 22일)

이 피정동안 마리 드 라 빠시옹의 묵상은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을 따라오다가 마침내 성체의 예수님에 이르렀다. 1882년 받은 성체에 관한 커다란 빛은 NS 8, 11에서 발견할 수 있다. 여기서 수난은 자기비움과 같은 의미로 쓰이고 있다. 

 1882년 피정 때, 그리고 이날 다시 삼위일체 하느님의 찬란한 아름다움을 보았는데, 그것은 다음 두 가지이다.
  - 말씀의 자기비움(인성 안에서 신성의, 그리고 십자가에서 인성의.)와 그 결과(인류가 하느님을 다시 볼 수 있게되고, 인류 가운데 사랑이 다시 현존하게 됨)
  - 성체의 자기비움(성체 안에서 하느님과 인류의 일치가 이루어지며 그것의 영원한 지속상태가 성체)

“... 이 아름다운 보화를 보면서 어떻게 자신을 죽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 문장은 말씀의, 강생과 구속, 성체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자기비움을 관상한 결과, 마리 드 라 빠시옹에게 일어난 변화를 보여준다.- 자신도 자신을 비우고 싶은 것이다. 사랑의 겸손과 겸손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싶은 갈망이 일어나면서 십자가의 희생제사에 자신을 일치하고자 결심한다.

이 기도에서 행복, 승리라는 말이 자주 나타난다. 예수님이 자신을 비우고 수난을 받아들이신 것 자체가 예수님의 행복이요 승리이다. 그러므로 인간 역시 자신을 비우고 예수님의 비움과 수난에 일치하는 그만큼 참된 행복과 승리를 나누어받을 수 있다. 프란치스코의 참되고 완전한 기쁨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는 행복과 승리인 것이다. 결국 마리 드 라 빠시옹에게 예수님의 삶은 자기 비움의 길이요, 인간의 행복은 이 비움의 길을 충실히 따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