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자의 말씀

NS 52 우리가 겪는 시련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를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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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NS 52
(라자로의 부활에 대한 복음 묵상)
나는 오늘 이러한 생각으로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복음서는)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드리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거룩하신 발을 닦아드렸다고 말하면서 예수님이 마리아에 대해 보이셨던 관심을 설명합니다. 다시 말해 마리아는 자신을 온전히, 그리고 모든 것을 드린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고 사랑받았기에, 그리고 마리아를 위하여 그 가족들도 더더욱 사랑하실 것이기에 마리아는 강한 힘을 소유합니다.
나는 또 마리아가 예수님이 부르시기 전까지는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을 울게 만든 사람이 막달레나라는 것, 예수께서는 마을로 들어가지 않고 막달레나를 불러오게 하신 그 자리에서 전혀 움직이지 않으셨다는 것을 주목했습니다. 당신의 행동이 사랑 때문임을 마리아가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신부님,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우리가 겪는 시련들은 무엇보다도 예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고 계시는지를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시련이 기이하면 기이할수록 그 시련은 더더욱 신랑과 신부가 일치하기를 그분이 원하신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내 오빠 라자로는 죽어서 냄새가 나지만 나는 여전히 희망을 가지고서 마귀와 계속 싸워야 합니다. 신부님, 내가 얼마나 약하고 비참한 존재인지요! 기도 중이 아니라 기도 후에 말입니다! 나는 지독한 고립 속에 있으나 동시에 사랑으로 차 있습니다. 이 사랑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나를 짓누르고, 태우며, 죽게도 만듭니다. … 순명이 없다면, 나는 길을 잃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1883년 3월 9일)

- 성경에서 예수께서 마리아에게 보이는 특별한 관심의 이유를 마리아가 자신을 온전히 드린 사람이라는 데서 찾고 있다. 마리아는 사랑하고, 사랑 받았으므로, 또한 예수님이 다른 이들보다 더더욱 마리아를 사랑하실 것이므로(부활 후의 발현을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마리아가 힘을 가졌다는 것이다.(뒤 단락에서 마리아가 예수님을 울게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마리아에게 예수님을 움직일 힘이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은 당신과 사랑의 관계를 가진 이에게 특별한 사랑을 보여주신다는 통찰이다. 제물자의 가장 근본 바탕은 예수님과 맺는 이 사랑의 관계이다. 
- 둘째 단락은 마리아의 사랑이 예수님께 대한 순종으로 드러났음을 주목한다. 이 사랑에 찬 순종이 예수님을 울게까지 만들었다. 예수님 역시 마을로 들어가시지 않고, 마리아 막달레나를 불러오게 하셨는데, 그것은 당신의 모든 행위가 사랑에서 비롯된 것임을 마리아에게 이해시키려는 것이라고 마리 드 라 빠시옹은 알아듣는다. 예수님이 이토록 마리아를 사랑한다는 것, 그리고 당신 사랑을 알아듣기를 원하신다는 것이 마리 드 라 빠시옹에게는 아름답게 보인다. 
- 시련이 기이하면 할수록 ... :  이 구절이 오늘 묵상의 결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마리아와 예수님의 관계를 묵상하다가 자신이 겪고 있는 이 시련이 인간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그만큼 이 시련이 예수님께서 마리 드 라 빠시옹과 신랑과 신부의 일치같은 완벽한 일치를 원하신다는 증거라고 결론 맺는다. 사건을 복음에 비추어 신앙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이 이러한 경우일 것이다.
- 마지막 단락에서는 라자로를 잃어버린 마리아와 오빠 샤를르를 잃어버린 자신을 동일시한다. 오빠의 죽음에도 불구하고(의지할 곳이 없어졌음) 계속 희망을 해야 하고, 악마와의 싸움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고 의지적으로 결심한다. 그러나 기도할 때는 이렇게 용기 있게 결심하지만 기도가 끝난, 일상에서는 다시 용기가 꺾이고, “나약하고 비참”한 나를 본다. 이 시련이 모두 예수님의 특별한 사랑을 말해주는 것을 알기에 사랑으로 가득 차 있기도 하지만 현실은 지독한 고립 속에 남겨 있고, 그래서 이 사랑이 부담스럽기도 하다. 사랑이 나를 짓누르기도 하고, 태워버리며, 죽게도 만들기 때문이다. 두 가지 측면 모두 현실이기에, 그는 갈피를 잡을 수가 없을 정도이다. 이럴 때 영적지도는 큰 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