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S 48 그분은 완전한 사랑이시므로...
본문
1. 구조
나는 보았습니다. 말씀 아신다 성부의 밖에는 아무 것도 아님을 당신 자신 밖에는
사랑 밖에는
보신다 사랑의 반대는 죄임을
그분은 원하신다
(완전한 사랑은) 시작하신다 비움을
비우신다 (당신의 신성을)
스스로 인간이 되신다 - 육화
말씀의 사랑은 자신을 비우실 것
말씀의 진리는 죽어서
아무 것도 아니게 될 것 - 파스카
사랑의 희생은 자신을 비우고, 영원히 그러할 것=성체=
< 비우시는 말씀과 인류의 신비적 결혼>
프란치스코 보셨다 - 이 결혼(사랑의 진리와 인류의)을
배우자로 맞이했다. - 가난을 통해 하느님을(말씀이 인류를 그러했듯이)
<인류가 다시 하느님의 배우자가 되기 위하여(하느님과일치, 결혼)>
나와 프란치스코는 이 신비적 결혼을 본 사람들이다.
신비적 결혼이란 성체 안에서, 지속적으로 비우시는 사랑의 희생 안에서
인류와 비우시는 말씀의 신비적 결혼이다.
말씀이 인류를 정배로 맞이하는 것을 본 사람, 그 사람 역시 하느님 자신을 가난을 통해서 배우자로 맞이하며, 이들을 통해
인류는 다시 하느님의 배우자가 되게 하기 위하여, 참 사랑이요 하느님, 하늘을 되입을 수 있게 된다.(선교의 의미)
2. 인물
나 - 내가 보다는 말이 두 번 나오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이 나와서 이 기도 중에 뭔가 중요하고 초월적인 체험을 했음을 말해준다.
말씀 - 하느님 네 번, 아버지 1번, 인격화된 사랑 1번
성프란치스코
인류
2. 그들간의 관계
주된 이미지가 결혼인데, 그것은 1단락과 2단락 사이에 위치한다. 결혼은 정배, 배우자로 하느님과의 일치를 상징한다.
말씀이 인류를 정배로 맞이했는데, 이는 인류가 하느님을 배우자로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니까 말씀은 당신을 사랑의
선물로 내어놓았으며, 그를 통해 우리 역시 자신을 사랑의 선물로 내어놓으라는 초대를 하신다. 말씀과 인류 사이의 이 일치를
가능하게 하는 움직임이 비움이다. 이 비우다는 단어는 본문 전체에 골고루 퍼져서, 주제를 통일성있게 보여주고 있다.
하느님의, 인류를 향한 움직임은 늘 내려오는 것으로, 육화, 죽음, 희생, 더 아래로 아래로 가는데 비해서 인류는 그렇지 않다.
성프란치스코가 가난 부인을 정배로 맞이한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이해하면 아무 의미가 없겠으나 가난, 비움은 결혼의 계약을
가능하게 해주는 방법이다. 그러니까 가난은 하느님과의 일치, 사랑을 가능하게 해주는 순응성, 개방성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