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S 53 나 자신이 하느님의 사랑으로 채워지기를 갈망하는 것...
본문
NS 53
내 아름다운 삼위일체의 영상. 내가 그분의 성전임을 봅니다. 나는 한낱 껍질에 지나지 않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 껍질이 계속하여 투명해지고 엷어지기를 바랐습니다. 이 모든 것이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나 자신이 내적으로 하느님의 사랑으로 채워지기를 갈망하는 것을 본 것과 마찬가지로, 외적으로 나를 인도하시는 또 다른
삼위일체가 나를 사로잡은 것을 보았습니다. 이 외적인 삼위일체는 그 자신이 흘러나오는 사랑의 바다와 나를 하나로 만들어줍니다. 이
또 다른 실제적인 삼위는(제가 본 것을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면…) 권능으로 무장하신 예수님과 예수님께 대한 지식으로 가득 찬
복음, 그리고 성령의 정배인 교회입니다. 내게 있어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소서.”라는 말씀 안에 모든 것이 완전히 들어 있음을
보았습니다.
신부님, 최근의 고통을 겪은 후부터 나는 이 말을 그치지 않고 되풀이합니다. 이제 이 말이 본성으로도 좋아졌습니다. 내게
있어 성덕은 바로 이 말을 완벽하게 실행하고, 다른 이를 위하여 이 말을 갈망하는 것이라고 깊이 믿습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고, 아버지의 뜻이 땅에서와 같이 하늘에서도 이루어지소서(마태 6, 10).” (1883년 3월 11일)
1) 삼위일체 : 삼위일체는 사랑의 바다이다. 여기서 예수와 복음, 그리고 교회라는 ‘실제적’ 삼위일체가 흘러나와서 나를
사로잡으며, 나를 인도하여 나를 사랑의 바다이신 내적인 삼위일체와 하나로 만들어주며, 나를 사랑으로 가득 채워준다. 사실 “실제적
삼위일체”라는 개념은 신학적으로는 근거가 없다. 다만 이 표현은 마리 드 라 빠시옹에게 예수님과 복음, 교회가 삼위일체만큼
하나로 인식되고, 그 모든 것이 삼위일체에서 흘러나온다는 인식을 보여준다.
‘나’ : 나는 그분의 성전. 나라는 것은 껍질에 불과할 뿐. 점점 더 이 껍질이 얇아져서 내 안에 계신 현존이 잘
드러나기를 바란다. 나는 내적으로는 하느님 사랑으로 가득 채워져 있고, 외적으로는 예수님과 복음, 교회라는 ‘실제적 삼위일체’에
사로잡혀 있다. 나는 지난 번 고통 이후로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소서”라는 말을 그치지 않고 되풀이하고 있다. - 마리 드 라
빠시옹이 삼위일체의 현존으로 가득차 있고, 또 그러기를 갈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럴 수 있는 길은 곧 매순간 내적으로,
또 행동으로도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것임을 기도 중에 깨닫고 있다. 다음의 성경해설을 보면 마리 드 라 빠시옹의 이 갈망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마태 3,2 :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마태 6,10 :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마태복음사가는 ‘하느님의 나라’ 대신 ‘하늘나라’라는 말을 사용한다. 이 하늘이란 말은 나라가 천상적이라는 말이
아니라 이 지상을 다스리는 하늘에 있는 나라라는 말이다. 구약성경의 세계에 익숙한 마태복음사가는 이 왕국이 항상 주님께 속해
왔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 영원한 왕국이 예수라는 인물 안에서 인류에게 가까이 왔다고까지 그 의미를 확장하고 있다.
가까이 왔다는 말은 오늘날 1) 왕국이 가까이 왔다. 2) 왕국은 이미 현존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현존이라는 말도
다양하게 이해할 수 있다. 왕국이 이미 충만하게 실현되었다는 말이거나 혹은 예수님의 활동과 인격 안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졌지만 곧
모든 이에게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말일 수도 있는 것이다. 어쨌든 왕국의 내림은 회개를 요구한다. 예수가 오게 하시는 이 왕국,
주님의 기도에서 임하도록 청하는 이 왕국은 땅에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질” 때 결정적이고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라는 기도는 또한 겟세마니에서 예수님의 기도와 다름이 아니다. 이 기도는 체념이나 수동의 기도가 아니다.
그보다는 하느님께 당신의 뜻을 이루어달라는 적극적인 청원이다. 그래서 번역을 할 때도 “아버지의 뜻”을 주어로 하였다.
‘이루어지소서’라는 동사 는 하느님 자신이 이루시지 않으면 불가능한, 온 우주에 대한 실현을 암시한다.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라는 이 구절을 주님의 기도 첫 두 구절과 함께 읽으면 하느님께서 당신의 뜻을 이 땅에 실현하여 주시는 것이 곧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신다는 의미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인류에 대한 하느님의 이 뜻은 인간 측의 회개 없이는 완성되지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 날 인간의 의지가 완전히 아버지의 뜻에 합치될 때 이 모든 것은 이루어질 것이다. 마태복음사가는 특히
공동체 안에서 아버지의 뜻이 실현될 때, 이 세상에서 이미 하느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TO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