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S 58, 59 이 세상의 평화를 얻기 위하여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과 함께 나를 봉헌하였습니다.
본문
NS 58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저희에게 평화를 주소서!”(1) 라는 말에 대하여 묵상하였습니다. 몇 달
전부터 이 기도가 특별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나에게, 그리고 세상에 평화를 달라고 기도했으며, 이 세상의 평화를 얻기 위하여
그분과 함께 나를 봉헌하였습니다.(1883년 4월 15일)(2)
NS 59
얼마나 내 어머니이신 마리아께 감싸여 있다고 느꼈던지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모든 것과 모든 이로부터 떨어져, 그분
안에서 높이 올라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온갖 피조물에게서 멀리 떨어진 듯 느끼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1883년 4월 17일)
(1) 하느님의 어린양 : 요한 1,29;19,14.36
이 복음구절은 예수님의 속죄적 죽음을 연상시킨다. 전통적으로, 두 가지 이미지와 연관되는데, 우선 이사야
52,13-53,12에서 나오는 고통받는 종의 이미지가 그러하다. 고통받는 하느님의 종은 무죄하지만 많은 이들의 죄를 없애기
위하여 어린양처럼 자신을 봉헌하였다. 둘째 이미지는 출애 12,1-28에 근거한, 이스라엘의 구속을 상징하는 파스카의 어린양이다.
요한 19, 14. 36에서 예수님은 6시경에 십자가형에 처해졌는데, 이 시간이 바로 성전에서 파스카의 어린양을 잡는 시간이다.
요한은 이런 장치로써 예수님의 죽음을 파스카의 어린양과 연결시켰다. 마리 드 라 빠시옹은 예수님이 자신을 파스카 제물로 봉헌하신
것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위하여 자신을 봉헌하고 있다.
(2) 마리 드 라 빠시옹 영성의 핵심은 이 “제물상태”에 대한 전적인 자기 증여 안에 있다. 제물이라는 이 성소로
인하여 그는 사랑과 희생에로 초대된다. 마리 드 라 빠시옹은 이 제물 성소를 그리스도의 구원적 희생과의 일치로 관상하며 그분의
뒤를 따라 하느님의 활동과 뜻에 대한 전적인 의탁을 통해 생활했다. 그러므로 마리 드 라 빠시옹은 전구의 기도를 하며 자신을
봉헌하는 것만이 아니라 베들레헴의 가난과 갈바리의 희생, 성체의 자기비움을 충실하게 따름으로써 하느님이 인간을 위하여 실행하신
자기증여에 자신의 봉헌을 일치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식으로 그는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수난의 남은 몫을 자기 몸으로
채우라는” 바울로의 초대를 생활했다. -Positio에서.
예수님은 세상의 죄를 없애시고,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이 제물이신 어린양을 관상하면서 마리 드
라 빠시옹은 제물자의 삶이 어떠해야 함을 배웠다. 제물과 어린양은 어느 정도 비슷한 의미를 지니면서 “제물 상태”가 어떠해야
함을 설명해준다. 즉 온유함, 겸손, 침묵, 의탁 등등. 이러한 단어들은 마리 드 라 빠시옹이 봉헌의 삶을 살 때 되풀이해서
나타나는 것들이며, 그로 하여금 세상에 평화를 주는 어린양의 평화를 어느 정도 맛보게 해준 자세들이다. 또한, 여기에서 제물과
선교가 떼어놓을 수 없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성격임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제물과 선교의 측면은 성체 안에서 실제로 가장
극적으로 구현되기에 마리 드 라 빠시옹의 카리스마의 세 요소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관상에서 온전히 일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