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S 77 세상에 나아가 온 세상에게 소리치고 싶었습니다.
본문
NS 77
(성체성혈대축일 8부 내 일요일 서간에 대하여)
세상에 나가 온 세상 전체에 이렇게 소리치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형제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가 죽음에서 생명으로
넘어갔다는 것을 압니다(1요한 3, 14).” 오, 사람들이여, 당신들은 죽음 안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형제들을 미워하고 영원한 생명의 원칙을 여러분 안에서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제 성프란치스코의 전기를 이탈리아 말로 읽으면서 내가 비록 합당치 않지만 나 또한 성인처럼 이 세상이 복음을 실천하도록
이끌고 싶다는 갈망에 사로잡혔습니다. 개혁의 필요성을 보면서 성인을 불살랐던 같은 불이 나를 태웁니다. 이 서간의 말씀에 힘을
받은 나는 세상에 이를 가르칠 수만 있다면 이 세상을 흔들어 깨우고 싶으며, 그를 위해서는 어느 것도 두려워하지 않을 듯합니다.
어떤 이는 벼리소를 보러, 다른 이는 집을, 또 다른 이는 자기 소유지를, 그러니까 자기에 대한 관심으로 사랑의 일치인
만찬의 초대를 거절하는 당신 백성, 특히 사제들로 인한 하느님의 진노를 보았습니다. 아주 명확하게, 번쩍이는 빛 속에서 왜 가난이
애덕의 어머니인지를 보았습니다. 가난은 자기애와 자기에게만 집중된 관심이 죽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1883년 5월 28일)
- 문단 나누기
1문단) 세상에 나가 - 그 어느 것도 두려워하지 않을 듯 합니다 : 선교에 대한 열정
사랑하게 하기 위하여, 사람들 안에 “영원한 생명의 원칙을 느끼게 하기 위하여 -떠나고 싶고, 온 세상에 외치고 싶다.
복음을 실천하게 하기 위하여/개혁의 필요에 응답하기 위하여 - 프란치스코처럼 온 세상을 흔들어 일깨우고 싶은 갈망에 사로잡히다/ 프란치스코를 불태웠던 불이 나를 태운다.
이를 위해서라면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 같다.
2문단) 어떤 이는 - 마지막 : 가난과 자기에 대한 관심
가난은 애덕의 어머니 : 가난은 자기애, 자기에 대한 관심, 자기 이익에 대한 죽음이므로 결국 (다른 이를 향하는) 애덕의 근본 자세이라고 할 수 있다.
- 등장인물
나 : 말씀으로 무장하여 - 땅을 흔들고, 두려워하지 않고, 떠나고 싶었고, 외치고 싶었으며, 복음의 실천을 다시 가져오려는 갈망에 사로잡혔으며, 프란치스코를 불태웠던, 같은 불로 탔다.
당신들 : 죽음 안에 있는, 사랑하지 않는 이들 형제를 미워하는 이들, 자신 안에 영원한 생명의 원칙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 자기에 대한 관심, 이익에만 사로잡혀 있는 이들, 한마디로, 가난하지 않은 이들
* 사람이 사랑하면 죽음에서 생명으로 넘어간다. 사랑하지 않는 것, 그것이 곧 죽음이다.
* 가난 : 자기애, 자기 관심에 대한 죽음, 자기에 대한 관심은 하느님과의 친교라는 잔치에 참여하는 것을 가로막으므로.
프란치스코 : 불로 태워졌다. - 지상에 복음의 실천을 되가져오려는 갈망으로.
‘나’ 안에서 같은 불을 일깨우는 분.
세상 : 개혁될 필요가 있는 곳
- 관련 성경구절
마태 22,1-14/ 루카 14,16-24. 루카에서는 메시아적 잔치에 초대받으리라는 희망으로, 마태오 복음에서는 당신
백성과 함께 결정적이고도 기쁨에 찬 친교, 일치를 이루시는 하느님의 상징으로서 잔치가 묘사된다. 그러나 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마태오와 루카는 같은 점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비유의 강조점은 아들에게 있지 않다. 그보다는 처음으로 초대되었던 사람들의
거절이 초점이다. 왕국에서, 마지막 심판 전에는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서로 섞여있을 것이다. 즉 하느님은 은총은 모든 사람을
다, 특히 죄인을 왕국의 기쁨에로 초대할 것이다. 하느님의 초대는 이처럼 거저 주어지는 것이나 그를 받아들이고, 선택할 필요도
있다.
- 마리 드 라 빠시옹의 선교에 대한 열정과 갈망, 불은 말씀과 프란치스코의 생애(모범)에 의해 지펴졌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영성생활에서 말씀과 영적독서가 하는 역할이다. 항상 더 생기있고, 뜨거운 열정으로 세상과, 하느님과의 일치에로
나아가는 삶을 유지하는데 복음과 살아있는 복음, 즉 성인들의 삶과 글을 가까이 접하고, 그 복음으로 변모되도록 나 자신을 개방하는
것(자기애와 자기 폐쇄, 자기 관심사에 갇히지 않고)이 관건임을 잘 보여주는 마리 드 라 빠시옹의 기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