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S 81 기쁨의 제병
본문
NS 81
시편 제26편으로 기도했습니다.
“주님께 오직 한 가지 청하여 얻고자 하는 것은 제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산다는 그것, … 주님께서 저를 당신 장막 안에 숨겨 두시기 때문이니, 저는 제단 둘레를 돌며 기쁨의 제사를 당신 장막 안에 올렸나이다.”
… 오늘 아침 묵상 중에 특히 기쁨의 제병’이란 말이 저를 충만하게 해주었습니다. 무척이나 힘이 들었던 나는 무수히
돌아다니며 헤매고 애쓰다가, 이제 마침내 제병이 되었습니다. 이때, 작년 피정 때 보여주셨던 성체의 자기 낮춤을 다시 보았습니다.
(어떻게였는지는 말할 수가 없습니다만) 조물주께 대한 피조물의 반항은 예수님의 자기 소멸로 보상되고 인간의 교만은 성체 안에서
신앙을 통해 비워짐을 보았습니다.
신부님, 그것은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만, 도무지 잘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 신부님, 기쁨의 제병, 율법의 제단에 놓인 감실에 머무르는 프란치스칸 제병이 되도록 합시다. (1883년 6월 25일)
기쁨의 제병, 기쁨의 희생제, 기쁨의 제사. 모두 같은 의미로 쓰였는데, 오늘날 번역으로 “기쁨의 제사(sacrfices
avec l'ovation)”라고 된 부분이 당시 번역판으로는 기쁨의 제병, 즉 une hostie du jubilation이라
표현되었다. 기쁨으로 봉헌된 제물이란 뜻이겠다. 자신을 봉헌하되 기쁨으로 그렇게 한다는 이 말에서 마리 드 라 빠시옹은 자기
봉헌의 태도를 읽어내었다.
그러나 ‘기쁨의 제물’이 되는 것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다. 그간 마리 드 라 빠시옹이 이유도 모르고 겪어야 했던 수많은
어려움, 막막함, 어두움 ... 헤매고, 돌아다니고 애써 찾는 과정이 자신이 제병으로 봉헌되기 위한 과정이었음을 읽어낸다.
이렇게 이르게 된 제물의 상태는 단순히 희생만이 아니라 성체 안에서 예수님과의 일치까지 포함하므로 기쁨도 수반하는 것이다. 제물의
이러한 면을 표현하기 위하여 마리 드 라 빠시옹이 찾아낸 말이 바로 “기쁨의 제병”인 것 같다.
기쁨의 제병은 예수님, 성체의 자기 비움, 자기 낮춤의 상태와 일치한 상태이므로 그 결과로 성체에 대한 믿음을 통해 인간의
교만도 비워지게 된다. 즉 기꺼이, 사랑으로 예수님의 자기비하와 일치함을 통해(기쁨의 제병이 됨을 통해) 그 자신 성체와 같이
변모된다. 자기 비움의 길에서 얻는 이 기쁨, 이것이야말로 ‘율법의 식탁’과 대비되는 프란치스칸 기쁨의 원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