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S 85 그분이 원하시지 않는 것을 내가 왜 원하겠습니까?
본문
NS 85
하느님, 저에게 당신의 현존 안에서 살 수 있는 은총을 주소서! 하느님으로 사는 것, 하느님을 위해 살기 위하여.
아주 감미로운 묵상을 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현존이라는 은사를 내게 허락하신 것 같았으며, 이제는 그 현존을
키우는 것만 남은 것 같았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인 피조물은 내가 보기에 하느님 안에만 홀로 머무르게 하는데 아주 좋은 도구
같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하느님께서 나를 피조물로부터 떼어놓고자 하신 일들을 타는 듯한 사랑과 함께 느꼈습니다. 그분이 아닌
모든 것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았습니다.
나는 이 본회라는 사업을 원했으며, 지금도 원합니다. 이것이 (교회의) 승리를 가져오는 수단 중 하나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이 모든 것은 그분 자신이 아니라 단지 그분에게서 나온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만일 그분이 본회를 원하지
않으신다면 내가 왜 원하겠습니까? 왜 여기에 매달리겠습니까? 모든 것은 그분이 아니므로, 내가 그분 안에 사라지기만 한다면 아무
것도 내 행복을 건드리지 못할 것입니다. (1883년 7월 13일)
- 하느님 현존 의식
하느님의 현존 의식 또한 하느님이 주시는 은총이다. 마리 드 라 빠시옹은 자신이 삶의 모든 순간에 이 하느님의 현존을
간직하고, 그로 인해 살 수 있는 은총을 늘 청했다. 참으로 하느님을 위해 살기 위해서는(doing) 하느님으로 인해(being)
살 수 있어야 한다. 늘 하느님 현존 안에 머무는 것, 혹은 하느님 현존을 의식하는 것, 이것이 오늘 묵상의 주제이다.
- 본질적인 것은 하느님이고, 하느님 이외의 모든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피조물들은
하느님과 함께만 있기 위한 수단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마리 드 라 빠시옹이 처한 상황조차도 피조물로부터 분리시켜
하느님과만 있게 하려는, 하느님 사랑의 결과로 받아들인다. 피조물에 대한 근본적인 이 이탈은 당시 신학적 사고로 과장된 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영성생활에서 하느님을 중심으로 두고, 그 나머지에 대해서는 불편심(不偏心;indifference)을 유지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오늘날 영성 흐름에서도 유효하다.
- 총장직을 박탈당한 채, 하느님의 뜻이라 여겨지는 본회의 존립조차 의심스러운 채, 언제 이 시련이 끝날지 모르는 암담함
속에 보내던 이 기간이 마리 드 라 빠시옹에게서 모든 이기적 욕심을, 설혹 그것이 하느님 나라를 위한 일에 관한 것이라 할지라도,
정화시키는 시간이었다는 것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본회가 교회 승리를 위한 도구라 믿기에 본회가 유지되는 것을 원하기는 하지만
만일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면 그것조차 놓아버린다는 말이다. 자신이 하느님의 뜻이라 믿는 그것조차도 이탈한 후 남는 것은
하느님의 현존과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 중요한 것이 이 둘 뿐이다. 그것만이 인간의 참된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사람이 다
박탈당하고 나면 그동안 나를 지탱해온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본질적인 것을 확인하게 된다. 우리의 사도직에
대한 마음가짐이나 사람, 물건 등에 대한 애착 정도를 이 빛으로 성찰해볼만 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