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S 97 구속의 신비는 하느님의 자기 소멸입니다.
본문
NS 97
구속의 신비, 그것은 육신을 취하고 십자가의 죽음에까지 이르는 하느님의 자기 소멸입니다. 하느님 자신처럼 한계가 없는 이
자기 소멸 안에서 인간은 참된 사랑에 이르는 길과 거짓 신성인 자아를 파괴하는 길을 되찾습니다. 참아 받을 가치가 있는 고통,
그것은 참된 사랑을 통한 자애심의 파괴입니다. 이 진리 안에서 섭리에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구원을 위한 참된 수단인지를 봅니다.
그러므로 다시 한 번 사랑께 나를 당신의 석쇠 위에 자유롭게 놓으시라고,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예수 마리아 요셉, 성프란치스코의
가난 안에서 태워버리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1883년 8월 11일)
석쇠에서 순교했다고 알려진 성라우렌시오 축일이다. 그래서 석쇠의 이미지가 나타난다.
필리 2,11, 말씀의 케노시스라는 맥락에 전체 기도가 놓여있다. 우리의 구속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와 파스카의
신비를 모두 “자기비움”이라는 관점에서 보고 있다. 고통이 아니라 이 한계가 없는 자기비움이 곧 인류에게 참된 사랑에로 가는 길을
열어주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통 자체는 그 고통이 오직 구속의(즉 생명을 구하는) 행위가 될 때만 가치가 있다. 우리가
사건을 통하여 드러나는 하느님의 뜻(섭리)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따라야 하는 것은(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럽든) 그것이 우리 자신의
구속과 다른 이의 구속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기비움의 자세, 가난의 자세야말로 우리가 따라야 하는 그리스도 봉헌의
핵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