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S 111 사랑, 그것은 하느님의 본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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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 111
하느님께서는 결코 잊어버릴 수 없는 아주 아름다운 광경을 피정의 선물로 보여 주셨습니다. 내가 증가시킬 수 있는 것은
하느님 사랑의 크기가 아니라 사랑하면서 느끼시는 그분의 기쁨입니다. 나 자신을 비우면 비울수록 나는 하느님을 더욱 사랑하게 되고
하느님께서도 나를 더욱 사랑하실 것입니다.
사랑, 그것은 하느님의 본질입니다. 신부님, 하느님께서는 얼마나 두렵고도 감미로운 능력을 인간에게 주셨는지 보십시오!
인간은 하느님께서 사랑을 실행하시는 것을 줄일 수도, 더할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이 사랑이신 것은 변할 수 없습니다. 사탄조차도
하느님을 바꿀 수는 없었습니다. 피조물이 하느님을 떠나가는 것이지 하느님께서 피조물을 떠나가시는 것이 아닙니다. 신부님, 내게는
이것이 아주 아름답게 보입니다. 인간의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습니다!
단 하나 확실히 아는 것은 내가 현세에서나 영원에서 나를 사랑하시는 기쁨과 즐거움을 하느님께 더해 드릴 수 있다는 이
생각이 내가 충실하도록 도와주리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쁨을 우리는 천국에 사시는 모든 성인들에게도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충실함이 그들 사랑의 즐거움을 더해 줄 것입니다). 이 얼마나 두렵고도 위안이 되는 영상인지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태 17, 5).” 하실 때, 영원한 말씀이신
하느님께서 즐거워하신다고 느낍니다. 우리 역시 예수님처럼 사랑이신 하느님을 조금이나마 즐겁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 나는
매일 우리 주님께서 나에게 보내주신 이 모든 시련과 굴욕들에 대하여 감사를 드립니다. 무엇보다도 올 한 해 동안 일어났던 것에
대해 말입니다. 그리고 나는 그분께 나의 희생을 교회와 작은형제회, 그리고 본회를 위하여 써달라고 청합니다. … (1883년 8월
23일)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인간은 이 하느님의 사랑을 신뢰하면서 받아들일 수도, 거절할 수도 있는 자유가 있다. 인간이 하느님을
더 사랑이시게, 혹은 덜 사랑이시게 만들 수는 없다. 그러나 하느님의 사랑을 맞아들이고, 사랑을 돌려드림으로써 나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기쁨을 더 크게 만들 수는 있다는 것이다. 마리 드 라 빠시옹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사랑,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리 드 라
빠시옹의 사랑은 서로 사랑함으로써 기쁨을 누리는, 생생하면서 상호적인 사랑이다.
이런, 상호적 사랑에 대한 관상은 너무 아름다워 말로 표현하기가 불가능할 정도이고, 두렵고도 위안이 되며, 감미롭기도
하다. 시편 8편의 저자가 인간의 한계와 더불어 신비를 보고서 인간이 무엇이기에...라고 노래한, 같은 감탄이 마리 드 라
빠시옹에게서 우러나온다. 인간에게는, 나에게는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릴 능력이 있는 것이다!
- 나를 사랑하시는 즐거움을 통하여 하느님의 기쁨을 크게 해드리는 것, 이 생각은 평범하지는 않지만 마리 드 라 빠시옹이
지속해온 하느님과의 대화라는 맥락 안에서 쉽게 눈에 띄는 표현이다. 진리 안에서 사랑한다는 말은 사랑하는 분께 기쁨과 즐거움,
행복을 드린다는 뜻이다. 이 말은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그분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하여 행한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듯이 “하느님 안에 머무른다”는 뜻이다.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두지 않으신다. 내가
언제나 그분 마음에 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요한 8,29) 이는 또한 하느님께 마리 드 라 빠시옹으로 인하여 “마음이
흐뭇한” 기쁨을 드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마리 드 라 빠시옹과 함께 하는 15일 기도에서)
그리고 이런 것을 깨닫게 해준, 언제나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을,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으로써 하느님께 즐거움을 드릴
수 있는 기쁨을 체험하게 해준 이 시련의 시간에 대해 감사를 드리고, 그 어려움들을 교회와 작은형제회, 본회를 위하여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