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자의 말씀

목마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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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 40
    “목마르다!” 예수님이 목마르셨던 것과 같은 목마름!
이는 무엇보다 하느님께 대한 목마름입니다. 단순성을 향하여 나를 데리고 가는 이 진리에 대한 목마름, 그 순수함으로 더욱 갈구하게 하는 사랑에 대한 목마름, 이 모든 것이 나를 이끌고 가는 하느님을 향한 목마름.
    나는 다시 나의 아름다운 삼위일체, 사랑의 진리, 현시(vue), 사랑의 예지(intelligence), 사랑, 사랑의 온기(chaleur)를 보았습니다. 삼위일체께서는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영혼이 일단 하느님의 그늘 아래서 그를 대하게 되면, 영혼은 자신을 태우는 이 갈증을 이해합니다. 목이 마릅니다! 진리와 애덕이신 하느님께 대한 갈증이지만 이는 나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온 세상을 위해서 느끼는 목마름입니다.
내가 불가마가 있는 곳으로 갈 수가 없기에, 내가 있는 곳에 그 불가마를 만들고 싶습니다. 나는 하느님께 대한 지독한 갈증을 진정시켜줄 이 하느님 나라를 목말라 합니다.
    그 갈증을 적셔줄 샘이 있는데, 그것은 성체입니다. 내가 오늘 아침에 본 것을 보신다면 성체가 어떤 힘을 가졌는지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성체는 사랑의 제물을 위한 유일한 음료이며, 유일한 생명입니다. 비록 그것을 마실 수는 없지만 그 신선함은 이 목마름을 식혀주는 샘이 되어 줍니다. 성체는 이 지상에 진리와 애덕의 현존입니다.
    그리고 나서 나는 다시 지극히 거룩한 성사를 조배하는 것이 지닌 권능을 보았습니다. 이는 진리와 애덕의 현시입니다. 그러나 진리와 애덕의 현시가 열매 맺기 위해서 성체는 진리와 애덕에 매혹된 영혼들에게 먼저 조배를 받아야 하고 또 그들은 가난한 영혼들이어야 합니다. 그때 그들은 천사들-하늘의 천사들이 아니라 세상과 감실을 이어주는 성체의 천사들-이 됩니다.
    얼마나 간절하게 “목이 마릅니다. 저로 하여금 이 지상에 애덕과 진리의 나라가 오도록 제가 본 것을 실현하게 해주시고, 성체의 천사들을 키워내게 해 주십시오.”라고 교황님의 발아래 엎드려 말씀드리고 싶었는지요!  (1883년 2월 13일)

1) “목마르다”라는 말이 12번이나 반복된다.
  - 나는 목마르다. 영혼이 일단 하느님의 그늘에서 삼위일체를 대하게 되면 이 목마름이 예수를 태웠던 것과 같은 목마름임을 이해하게 된다.
  - 나는 우선 하느님이, 그리고 이 진리와, 이 사랑과 하느님, 진리와 애덕, 하느님 나라에 대해 목이 마르다.
  -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도 그렇지만 온 세상을 위해서 하느님이 목이 마르다.
  - 이 목마름은 하느님 나라를 통해서, 샘(성체)의 신선함을 통해서, 성체를 통해서만 진정된다.
  - 나는 교황에게 이 목마름을, 하느님 나라에 대한 이 목마름을 말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 무척 안타깝다.

2) 단순함
  성경에 나타나는 “단순함”
  마태 6,22 : “눈은 몸의 등불이다. 그러므로 네 눈이 맑으면 온몬도 환하고,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온몸도 어두울 것이다.” - “맑으면” 이라는 형용사 보다는, 직역하면 “단순하면”이라는 형용사가 더 맞다. 같은 형용사가 루카 11, 34에도 쓰이고 있다. 이는 시선이 오직 하느님과 그분의 율법에만 고정된, 통합된 인간을 가리킨다. “단순하다”는 단어는 구약의 여러 곳, 후기 유대교에서 자주 쓰이는 동시에 바울로가 자주 강조하는 덕목이다.
  로마 12, 8의, “권면하는 사람이면 권면하는 일에 힘쓰고, 나누어 주는 사람이면 순수한 마음으로, 지도하는 사람이면 열성으로,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면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라는 구절에서 단순함은 계산하지 않고, 섞이지 않고, 순수하게, 숨겨진 의도가 없다는 의미이다.
  2코린 9,11.13에서 “여러분은 모든 면에서 부유해져 매우 후한 인심을 베풀게 되고, 우리를 통하여 그 인심은 하느님에 대한 감사를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그들은 이 구제활동을 높이 사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고백하는 여러분의 순종을 보고 또 자기들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과도 함께 나누는 여러분의 후한 인심을 보고 하느님을 찬양할 것입니다.”에서는 마음의 자유와 단순성을 연결시키고 있다.
  2코린 11,3에서 “하와가 뱀의 간계에 속아 넘어간 것처럼 여러분도 생각이 미혹되어 그리스도를 향한 성실하고 순수한 마음을 저버리지 않을까 두렵습니다.”에서 단순함은 다시 한 번 순수함과 연결되어 나온다.
  에페 6,5 “종 여러분, 그리스도께 순종하듯이, 두려워하고 떨면서 순수한 마음으로 현세의 주인에게 순종하십시오.”
  콜로 3,22 “종 여러분, 무슨 일에서나 현세의 주인에게 순종하십시오.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기 좋아하는 자들처럼 눈가림으로 하지 말고, 주님을 경외하면서 순수한 마음으로 순종하십시오.”
  야고 1,5 : “여러분 가운데에 누구든지 지혜가 모자라면 하느님께 청하십시오. 하느님은 모든 사람에게 너그럽게 베푸시고, 나무라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면 받을 것입니다.”
  - 하느님은 단순하시므로 인간에게 어떤 조건도 내걸지 않으시고 내어주신다.(로마 12, 8; 2코린 11, 3 ; 콜로 3,22) 이 하느님의 단순성은 마음이 나누어진 인간과 대조된다.(야고 1,8-의심하는 사람은 바람에 밀려 출렁이는 바다 물결과 같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주님에게서 아무 것도 받을 생각을 말아야 합니다. 그는 두 마음을 품은 사람으로 어떠한 길을 걷든 안정을 찾지 못합니다.) 이때 두 마음을 가졌다는 말은 그리스어로, 하느님을 향해서나, 인간을 향해서나 간에 이중성을 가리킨다. 이 단어는 실상 예수님 이전에는 성경에 나타나지 않는다. 주로 교부들의 글, 예를 들어 Hermas, Psteur, Percepte 9 등에서 나타나는데 모두 두 가지 방향의 갈망에 애착한다는 맥락에서 쓰인다. 그러나 ‘이중적 마음’이라는 이미지는 유다이즘으로까지 올라가는데, 예를 들면 꿈란 문서 규책 4,13-16이 그러하다. 이런 경우 특히 마태 복음사가가 싫어하는 위선자의 의미가 붙는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세상에 대한 사랑 사이에 적당히 타협하여 살기를 바라는 사람, 믿음이나 기도, 행동거지가 왔다갔다 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그는 완성된 사람, 하느님의 단순성을 자신 안에 반영하고자 애쓰는 사람과 대조된다.(1,5-8;5,12)

3) 나 : 나는 하느님께 목이 마르다. 목이 말라서 단순성을 향해 가게 되고, 그 순수함으로 인해 더욱 더 사랑에 대해 목마르게 된다. 결국 이 모든 것이 하느님께로 향한 나의 목마름을 더 깊게 한다.
  나는 내 아름다운 삼위일체를 본다/다시 본다. 그리고 이러한 체험이 나를 더욱 목마르게 해서 나를 태운다.
  나는 성체가 무엇인지, 성체 조배의 권능이 어떠한지를 본다.
  나는 진리와 애덕에 매혹된 영원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도 본다.
  내가 불가마가 있는 곳에 갈 수가 없으므로, 내가 있는 바로 이곳에 그 불가마를 만들기 원한다.
  나는 교황님의 발 아래에서 말할 수 있기를 애타게 원한다.(현재 상황은 그것이 불가능한데도!)
    - 내가 목마르다고
    - 내가 보는 것을 실현할 수 있게 해달라고
    - 성체의 천사들을 양성하게 해달라고
    - 이 지상에 진리와 애덕의 나라를 오게 하기 위하여.
  온 세상을 위해 하느님 나라를 오게 하려는 갈망은 하느님 체험을 하면 더욱 더 간절해진다. 그런데 현실은, 로마 수녀원의 숫자까지 제한되었고, 미래 상황은 불확실하기만 한 채 자신의 활동은 제한되어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그의 안타까움이 잘 전달되는 기도이다.

4) 하느님 :
- 예수께서 목마르시듯 나도 하느님(사랑과 진리)에 목이 마르다.
- 나의 아름다운 삼위일체(사랑의 진리-성부; 현시, 사랑의 예지-성자, 사랑의 온기, 사랑-성령)를 보다. 내가 하느님을 본다는 뜻은 하느님의 그늘 아래에 있다는 말이다. 마리 드 라 빠시옹에게 삼위일체는 항상 “나의 아름다운-”이라는 형용사와 함께 등장한다.
- 하느님의 나라(이 지독한 하느님에 대한 갈증을 진정시켜줄 이 하느님 나라를 나는 목말라 한다./나는 하느님 나라를 이 지상에 주기 위하여 (FMM-성체의 천사들)을 양성시키고 싶다. 그러니까 FMM은 하느님 나라에 대한 이 갈망의 결과이라고 볼 수 있다.)
- 불가마 : 삼위일체라고 생각해도 되겠다. 마리 드 라 빠시옹 자신이 삼위일체께 갈 수 없으므로 자기 안에 삼위일체의 현존을 맞아들이겠다고 해석할 수 있다.

5) 성체 :
- 사랑의 제물(인 사람을) 위한 유일한 음료요 유일한 생명, 목마름을 식혀주는 샘, 이 지상에 현존하는 진리와 애덕. 성체조배는 진리와 애덕의 현시이며, 그 자체로 권능을 지닌다.

6) 영혼들 :  열매가 익기 위해서는 진리와 애덕에 매혹된 영혼들이 성체를 조배해야. 그리고 이 영혼들은 가난해야한다. 이런 이들은 천상에 사는 천사는 아닐지라도 성체의 천사라고 말할 수 있다. 이들은 세상과 감실의 은총을 이어주기(소통시켜주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조배를 통하여 이 지상에 애덕과 진리의 나라를 오게 하기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진리와 애덕에 매혹되어 성체를 조배하는 가난한 이들은 세상과 감실이 은총을 이어주며, 이 땅에 하느님 나라를(진리와 애덕의 나라를) 오게 하기에 성체의 천사라 할 수 있다.

7) 관련 성경구절
요한 19,28 : 그 뒤에 이미 모든 일이 다 이루어졌음을 아신 예수님께서는 성경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시려고 “목마르다.”하고 말씀하셨다.(시편 69,22;22,16)- 즉 아버지께서 당신에게 완수하라고 맡기신, 그래서 성경에서 당신에 대하여 적혀있는 그 일을 완수하시려고 “목마르다”라고 하신 것이다.
요한 4. 그곳에는 야곱의 우물이 있었다. 길을 걷느라 지치신 예수님께서는 그 우물가에 앉으셨다. ...마침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으러 왔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 하고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 “선생님은 어떻게 유다 사람이시면서 사마리아 여자인 저에게 마실 물을 청하십니까?” “네가 하느님의 선물을 알고 또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하고 너에게 말하는 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오히려 네가 그에게 청하고, 그는 너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나 다시 목마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선생님, 그 물을 저에게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목마르지도 않고, 또 물을 길으러 이리 나오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나에게는 너희가 모르는 먹을 양식이 있다.”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일을 완수하는 것이다.” 
관련 성경구절을 보면서 영적노트를 함께 묵상하면 더 풍요로움을 아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