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자의 말씀

NS 114 사랑은 비움을, 비움은 사랑을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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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 114
지난해에 사랑께서 주신, 사랑은 비움을 부르고 비움은 사랑을 부른다는 생각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나 자신을 초월하게 하는 이러한 사랑의 상태를 원했으며, 사랑의 뜻에 대한 이 온전한 의탁을 애타게 갈망했습니다. 나는 어느 한 순간이라도 내가 하느님을 떠나거나, 그분이 나를 떠나시지 않고 살아야 하는 지성소가 되어야 함을 얼마나 분명하게 보는지요! 사랑의 뜻이 나를 마음껏 처분하시도록 해 드리는 이 이탈, 이것이 나의 결심입니다. (1883년 10월 7일)


이 짧은 글에 사랑이란 단어가 여섯 번이나 나온다. 이 사랑께서 나에게 영감(생각)을 떠올려 주시고, 사랑이 있으면 더 이탈을 바라게 되고, 이탈하게 되면 더욱 더 사랑하게 된다. 이탈은 사랑의 결과이기도 하고 더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길이기도 한 것이다. 이러한 경지의 사랑은 나를 뛰어넘는 어떤 상태로서, 하느님과 내가 단 한 순간도 떨어지지 않고 있는, 사랑의 일치를 이루는 상태이다. 그러니까 이탈이란 다름아닌 하느님과 완전히 일치를 이루는 상태이자 방법인 셈이다. 이것이 프란치스칸 가난이 아닐까?

이탈이란 사랑이신 하느님의 뜻에 대한 온전한 의탁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의 이탈은 사람을 더욱 더 사랑으로 변화하게 한다. 이 이탈을 통하여 사람은 그 자신이 되어야 하는 바, 지성소, 즉 하느님과 인간이 완전한 사랑의 일치를 이루는 상태로 변화할 수 있다. 이탈, 가난은 벗어버림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하느님 뜻에 아무런 장애도 두지 않는 온전한 개방성, 우리 용어로 말하자면 순응성에 더 중심이 있다. 이 기도 전체에서 이냐시오 성인의 의탁의 기도를 떠올릴 수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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