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자의 말씀

내 영혼 안에 하느님이 계시고 ... 자신을 보시며, ... 서로 사랑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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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NS 13
애덕이 마리아의 전교자들의 특징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늘의 동정녀께서는 지금도 여전히 당신 아드님을 주러 땅을 향해 오십니다. 그분께서는 애덕으로 무장한 채로 오십니다.(1882년 8월 30일)

1) 마리아의 전교자들의 특징이 애덕이 되어야 한다고 언명한 다음, 창립자는 그 이유를 마리아에게서 찾고 있다. 마리아께서는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움직임 중에 계시는데, 그것은 아들을 주기 위함이며, 아들을 주는 방법은 사랑이다. 그분은 사랑으로 무장을 해오시고, 그 사랑으로 세상에 아들을 준다. 이와 마찬가지로, 마리아의 전교자들이 세상에 예수님을 주는 방법 또한 애덕이라야 한다.

NS 14
은총을 통해 내 영혼 안에서 하느님이 계시며, 하느님 자신을 보시며, 하느님 자신을 서로 사랑하십니다. 내 안에는 거룩하신 삼위일체가 계십니다!
관상이란 내 안에 계신 이 하느님의 존재이며, 그분을 보는 것이며, 그분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하느님의 존재를 모시고서, 보면서, 사랑하면서 나는 온전한 일치를 이룹니다. 하느님이 계시지만 만일 내가 그 현존을 알지도, 보지도, 사랑하지도 않는다면, 그분은 내 안에 살지 않으실 것입니다.
관상은 그러므로 내 안에 계신 하느님의 생명이자 양식입니다.
만일 그분이 계시다면, 내가 그분을 뵙는다면, 그리고 그분을 사랑한다면 나는 그분이 계시기를, 그분을 보기를, 그분을 사랑하기를 더 많이 원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성장을 하게 될 것은 당연합니다.
만일 내가 내 안에 하느님을 모시고, 보고 사랑한다면 나는 모든 피조물 안에 계신 하느님이 계시고, 그분을 보고, 그분을 사랑하고자 하는 갈망으로 죽을 지경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보다 앞서 하늘에서 온 갈망이며, 그분은 은총을 통하여 우리 안에 계십니다.
결심: 내 삶을 하나의 기도로 만들 것입니다. 나는 끊임없이 하느님을 소유하며, 그분을 뵙고, 그분을 사랑할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제물이신 예수님과 함께 끊임없이 바쳐질 것입니다.  (1882년 9월 1일)

1) 마리 드 라 빠시옹이 오늘날 우리가 하는 묵상(성경을 중심으로 매일 한 시간씩 하는)을 일컬을 때, 그것은 묵상(meditation)이 아니라 관상(oraison)을 말한다. 그에게 묵상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일종의 묵상 준비에 해당한다. 즉 전날 저녁에 다음 날의 복음을 미리 읽고 거기에 관한 설명을 읽거나 듣고, 묵상 요점을 생각해두는 것이다. 그런 준비는 다음 날 묵상 때 바로 관상으로 들어가는데 도움이 된다. 관습서 1에 마리 드 라 빠시옹은 기도(Oraison)의 지도정신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이것은 공의회 이전, 공동체 전체가 함께 묵상함께 할 때임을 유의하자.)
“기도. ... 우리는 하느님의 현존을 깊이 의식하고, 그분을 경배하며 그분 앞에서 겸손되이 머뭅니다. 그리고 우리는 전날 밤에 정한 기도의 주제로 들어갑니다. 만일 이 주제가 영혼의 현재 요구에 적합하지 않을 때는 다른  주제를 선택하여도 좋습니다. 본회가 보통 자신의 자녀들에게 제안하는 기도의 방법은 다음 다섯 가지 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신앙의 신비나 성인들의 축일, 혹은 보통 묵상 주제를 요약한 글을 알린다.
2) 두 번째는 주제와 관련된 화살기도나 기도.
3) 그날 축일이나 신비 안에서 우리 주님,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녀, 혹은 성인들을 연구한다. 이것이 우리 묵상집에 나오는 첫 번째와 두 번째 요점이다.
4) 주제 혹은 신비의 정신을 자신에게 적용시킨다. - 그때의 상황과 은총의 감화에 따라 신앙의 기도, 통회, 겸손, 애덕, 청원 등, 친밀하고도 다양한 기도로. 이 부분이야말로 각자의 필요에 따라 적용된, 참된 의미로 기도(관상, oraison)라 말할 수 있는 것으로, 자기 마음 속으로 예수 성심과 만나 나누는 대화인 것이다.
5) 마지막으로 실제적인 결심을 하고 영적 꽃다발을 기억하도록 노력한다.
첫 두 번째와 이 마지막은 상대적으로 짧고, 세 번째와 네 번째 단계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인다.”

2) “계시다.”라는 동사가 6번 나온다. 하느님은 은총을 통하여 내 안에 계시다. 관상이란 (무슨 활동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이 하느님의 현존이다. 그런데 이 하느님의 현존을 내가 그것을 의식하지 않는다면 하느님은 내 안에서 사시지 않는다. 반대로 의식한다면 나는 그분의 현존을 더 갈망할 것이고, 이 갈망이 얼마나 큰지 갈망 때문에 죽을 지경이 될 것이다. 이렇게 (하느님의) 은총과 (인간 쪽의) 갈망으로 영혼은 점점 더 하느님의 현존에 민감해지고, 마침내 모든 피조물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알아보기까지 한다.

3) “보다”라는 단어는 7번 나타난다. 이 “보는” 주체는 두 명인데, 우선 하느님이 내 영혼 안에서 당신 스스로를 보신다.(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이므로!) 그런데 나도 관상을 하면서 내 안에 있는 그분을 본다. 이렇게 보는 것을 통해 나는 하느님과의 일치를 완성한다. 내 안에서 하느님을 관상하면 할수록 그분에 대한 갈망은 커져가며, 갈망이 커져갈 수록 나는 더 그분을 내 안에서, 나아가 모든 피조물 안에서 알아볼 것이며, 이렇게 하느님의 은총과 갈망으로 영혼은 하느님과의 일치로 가는 길에 있어 진보해갈 것이기 때문이다.

4)  “사랑하다”도 역시 7번 나온다. 내 안에서 하느님이 “서로” 사랑하신다. 마리 드 라 빠시옹이 관상 중에서 자기 자신 안에 현존한다고 인식한 하느님은 서로 사랑하시는 분, 즉 삼위일체이시다. 여기서 인간은 그 존재 자체로 삼위일체 하느님 안에 존재하면서 성부, 성자, 성령 사이에 왔다 갔다 하는 사랑에 휩싸여 있다.(요한복음의 신관, 인간관에 가깝다.) 인간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인식이요 응답일뿐이다. 그러나 이 응답이 없다면 하느님이 인간 안에 살지 않는 것과 같은 결과를 가져올 정도이므로, 인간의 응답은 아주 중요하다. 다른 동사와 마찬가지로 사랑도 역시 더욱 사랑을 불러일으켜 하느님과의 일치에로 이끈다.

5) “모시다.”라는 단어는 4번 등장한다. 내 안에 삼위일체가 계시며, 이 삼위일체의 현존이야말로 우리가 하느님과 일치할 수 있는 근거이다. 모시는 행위란 다름 아닌 내 안에 계신 하느님 현존을 인식하는 것이며, 그 현존에 보다 민감해지는 것이다. 인간은 이 모시는 행위로써 하느님과의 일치에로 나아간다.

6) 관상은 내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 자체이기도 하고, 그렇게 내 안에 계시고 또 모든 피조물 안에 계신 하느님의 현존을 인식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에 관상의 필요성이 있다. 하느님은 당신 피조물 안에 계시면서 당신 자신을 계시하시지만, 그것을 인식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인간이 이 하느님의 현존에 무디다면 하느님은 마치 우리 안에 살지 않으시는 것과 같다. 반대로, 이 하느님의 현존을 의식하고, 보고, 사랑하면 할수록 내 갈망은 더욱 더 커져가서 마침내 모든 피조물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고, 그분과 완전한 일치를 이루기까지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은총으로 가능하지만 동시에 관상을 통해 스스로 민감해지지 않으면 어렵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관상은 내 안에 계신 하느님의 생명이자 양식이다. 마리 드 라 빠시옹은 이러한 자신의 기도 체험을 바탕으로, 관습서에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묵상하는 영혼은 상상하는 영혼이 아니라 굳센 덕을 지니는 영혼입니다. 이 영혼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마음에 임하시도록 자신을 잊어버리는 영혼입니다.”(관습1/13)

7) 하느님의 현존에 대한 이러한 관상 후에 그는 자기 자신의 삶을 하나의 기도, 관상으로 만들기로 결심한다. 즉 관상하는 태도를 늘 지속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이 말은 자신 안에서, 모든 피조물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발견하고, 간직하며, 사랑하는 태도이다. 이것이 마리 드 라 빠시옹이 예수님과 일치하여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는, 가장 우선적인 길이다.

그러므로 현존하다, 보다, 모시다, 사랑하다 등의 단어는 모두 관상과 깊이 연관되는 동사들이다. 이 동사들이 드러내는 모든 움직임은 하느님이 먼저 시작하셨고, 인간을 향해 무한히 주고 계시며, 인간이 그에 대해 인식하게될 때 비로소 같은 움직임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기도에 대한 좋은 가르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