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자의 말씀

교회의 승리에 대한 생각

작성자 수녀회 조회조회 4,122

본문

NS 23
    교회의 이 승리에 대한 생각은 항상 나를 따라다닙니다. 나도 어쩔 수가 없이 나는 나 자신을 봉헌합니다. 나는 내 고통을 이 목적을 위하여 바칩니다. 나는 내 딸들에게도 나와 함께 기도하고 고통을 참아 받으라고 청합니다. 종신서원을 하면서 나는 내 딸들에게 십자가가 그려진 작은 카드를 유일한 기념품으로 주었습니다. 거기에 나는 이런 말을 넣었습니다. “베드로께서 감옥에 계십니다. 베드로의 쇠사슬을 부수기 위하여 여러분의 어머니가 자신을 바치듯이, 여러분도 보잘 것 없는 이 어머니를 하느님께 바쳐주십시오.”
    교회의 승리는 외적인 승리와 영적인 승리 두 부분에서 이루어지는 듯합니다.
- 외적인 승리는 이 세상의 권력가들이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고, 교황님을 통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조력자가 되는 것입니다.
- 영적인 승리는 하느님께서 다른 무엇보다 앞서 참으로 흠숭을 받으시며, 하느님의 사랑을 위하여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계명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유는 모르지만 이 글을 쓰는 순간 내 몸이 떨림을 느낍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내 곁에 아주 가까이 계시는 것 같습니다. 마치 내가 내게서가 아니라 그분에게서 베일을 걷어내는 것 같습니다.
나로서는 이 두 가지 승리가 꼭 실현될 것 같은데, 어떤 방식으로? 그것은 모르겠습니다. 내가 댈 수 있는 증거는, 1) 세상의 기다림 2) 이 승리를 얻기 위해 기도하며 희생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는 영혼들이 도처에 있다는 것입니다. 신부님, 그리고 마지막으로, 본회야말로 그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본회가 어떻게 탄생했습니까? 누가 본회를 원했습니까? 누가 본회를 도와주었습니까? 나도, 또한 그 누구도 아니라는 것을 신부님께서 잘 알고 계십니다. 본회가 형성되기까지 만일 우리 자매들 각자로 하여금 승리를 얻기 위하여 고통을 바치도록 내가 애쓰지 않았더라면 나는 내 양심의 목소리에 거슬러 행동한 셈이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아무 것도 주시지 않으실 것이라면 이렇게 많은 일을 하게 하지는 않으셨을 것입니다.  (1882년 9월)


1) 9월의 어느날, 라파엘 신부님은 창립자가 생각하는 “교회의 승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적어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분이 마리 드 라 빠시옹을 알기 위하여 어떤 방식을 썼는지 조금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글은 그에 대한 응답으로, 이렇게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창립자에게 숙고하고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을 것임은 당연하다.

2) 교회의 승리에 대한 생각 : 
교회의 승리, 즉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 자신을 봉헌한다는 생각은
- 자신도 어찌할 수 없이 늘 자신을 따라다니고
- 그래서 자신의 고통을 이 목적을 위해 바치며
- 자신뿐 아니라 자매들에게도 이 목적으로 봉헌하자고 재촉한다.
이처럼 교회의 참된 승리를 위한 자기 봉헌은 마리 드 라 빠시옹과 본회 성소의 교회적 측면을 이룬다.
이 성소는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 즉 자기 의지를 초월하는 것이라고 느끼는데, “나도 어쩔 수 없다”거나 “나도 모르겠지만 몸이 떨려온다”거나 하는 표현이 그것을 말해준다. 나에게서가 아니라 그분에게서 베일이 벗겨지는 것 같다는 것은 내가 변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이 바뀌고 그에 따라 정화가 진행되면서 조금씩 하느님이 누구이신지를 알게 된다는 뜻이다.
우리 카리스마의 여러 측면중 오늘날 가장 소홀히 되고 있는 것이 이 교회적 측면이 아닐까 싶다. 교회의 승리(오해의 여지가 있는 이 말을 잘 이해해야 하지만)를 위하여 자신을 바친다는 이 성소는 마리 드 라 빠시옹이 글라라회에서 했던 체험 이래 늘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3) 교회의 승리에 대한 두 번째 의미는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하느님 나라, 하느님의 다스림과 같은 개념이라 이해할 수 있다.

4) 교회의 승리가 실현되는 것 :  묵시록 12장에 나오는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 여인”을 연상시킨다. 이 여인이 낳는 아이는 시편 2,9에 나오는 메시아 예언을 실현하고 있으므로 메시아라 이해해도 되겠다. 12장 전체가 창세기 3,15절의 예언을 직접 실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부수고 승리를 가져올 것이라는 구절 말이다. 12장에 나오는 용은 옛날에 뱀, 혹은 악마, 사탄이라 불리는 존재였다. 이 여인, 사탄의 머리를 부술 메시아, 그리고 믿는 이들을 낳을 여인은 시온(이사 54,60 호세 2,21-25), 즉 하느님의 백성임이 확실하다. 메시아의 어머니로서, 이 12장의 여성은 교부들이나 전례, 혹은 아이콘에서 흔히 마리아로 해석되어졌다. 오늘날 주석가들은 이 여인과 마리아를 동일시하는데 의문을 표하고 있으나 교회의 표상으로서 마리아라 해석하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TOB)

5) 어떤 방식으로? : 그렇다. 그는 어떤 식으로 교회의 승리가 실현될지 이 순간은 모른다. 다만 “교회의 승리”가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명료해질 것이며, 어떻게 교회의 승리가 실현되는지도 점차 보게될 것이다. 확실한 것은 교회의 승리가 실현될 것이라는 것인데, 그 근거로 마리 드 라 빠시옹은 시대의 징표(그가 당시 사회에서 교회의 승리에 대한 갈망을 읽어냈다는 말이다.)와, 많은 영혼 사람들의 기대, 그리고 무엇보다 본회의 탄생을 본다. 본회의 탄생은 그에게 온갖 인간적 의지를 넘어서는, 하느님 섭리의 결과였다. 하느님께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봉헌하고 일하는 성소를 가진 본회를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불가능한 상태에서 일으키셨다는 것 자체가 교회의 승리를 하느님께서 이루어주신다는 표시로 여겨졌다. 이러한 믿음이 있었기에 마리 드 라 빠시옹이 초기에 겪어야 했던 반대와 시련을 그는 오히려 자신의 성소에 충실하라는 하느님의 재촉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6) 속죄회에서 분리되고, 본회가 창설되던 그 혼란한 시기를 마리 드 라 빠시옹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지냈으며, 어떤 방향으로 자매들을 지도했는지를 엿볼 수 있는 구절이다. 그는 자매들이 겪고 있던 고통을 교회를 위하여 하느님께 바치자고 독려함으로써 자매들이 그 시련을 누구를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신앙으로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에게도 이러한 것들이 쉽지 않았을 터이지만 이렇게 하는 것이 참으로 양심에 따르는 행위였다. 그랬기에 그는 떳떳하게 본회가 하느님의 계획과 뜻으로 생겨났다고 말할 수 있으며, 앞으로도 본회가 많은 열매를 맺을 것임을 희망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