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자의 말씀

나의 잔인한 의탁을 느꼈습니다.

작성자 수녀회 조회조회 4,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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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 26
나는 나의 잔인한 의탁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나는 하늘이 내 안에서 나의 거룩하고 티 없으신 어머니를 보여주시며 그분의 축소판이 되라고 말씀하셨다고 바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고뇌의 시간에 그분께서 당신 안에 나를 품어주셨다고 말입니다.(1883년 1월 22일)

1) 1883년 1월 22일 로마 공동체의 자매들 숫자를 4명으로 줄이라는 포교성성의 명령이 전달되었다. 로마에 공동체를 세우고, 프란치스칸이 되면서 점차 거세어지고 있던 본회에 대한 반대가 본격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아름다운 추억 64쪽-67쪽 : 위로와 십자가 사이에서 1월 22일을 맞이하였다. 성녀 아녜스는 우리에게 작은 순교를 가져다 주었다. 교황청의 조심스런 처사가 내려진 것이다. 우리의 로마 수녀원은 온전히 합법적인 것이었고, 필요한 모든 문서도 책임자들의 서명을 갖춘 것이었지만 갓 태어난 우리 수도 가족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동요 앞에서 교회의 권위자들은 우리에게 부여했던 특권들을 정지시키는 것이 신중하다고 믿게 되었고, 마침내 성녀 헬레나 수녀원은 축소되고 제한되었다. 이 고통스러운 명령이 1월 22일 전달되었을 때, 나는 고백성사를 보러 아라첼리에 가 있었다. 마리 드 생뜨 엘렌느 수녀가 이 소식을 가지고 왔다. 나를 위로하기 위하여 우리의 신부님들은 세귀르 후작이 쓴 성프란치스코의 시 구절을 묵상하라고 주셨다. 이는 완전한 기쁨에 대한 세라픽 사부님의 열정을 되새기는 것이었다. ... 나는 다시 한번 모나코 라 발레따 추기경과 호워드 추기경을 방문해야 했다. 내가 믿기로, 총장 신부님 역시 그분들을 방문했다. 그 애덕의 결과로 로마 수녀원은 회헌을 인가받을 때까지 그대로 존속하게 되었다.
    총대리 추기경님과 호워드 추기경님을 찾아뵈온 일이 나에게 무척이나 힘든 것이었음을 굳이 덧붙여야 할까? 특히 문제의 핵심이 되었던 것은 나 자신이었으니, 이 경우에는 멀리 떨어져 머무는 것이 훨씬 좋으련만,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항상 순명하도록 은총을 주셨다. 그러나 신부님들은 내가 충분히 너그럽지 못하다고 보셨고, 명령을 반복하셨다.

2) 자신에 대한 반대가 로마 수녀원 수녀들의 숫자 제한으로 드러나고, 이 때문에 마리 드 라 빠시옹은 자존심을 죽이고 로마 권위자들을 찾아다녀야 했다. 이것이 바로 “의탁”을 잔인하다고 표현한 이유이다. 그에게 의탁은 쉬운 상황에서만 발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 억울하고 힘든 상황에서 그래도 의탁을 발할 수 있었던 힘은 마리아에게서 왔다.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상황을 통해 자신이 마리아의 축소판이 되기를 원하신다고 느끼면서 마리아 안에서 이 고뇌의 시간을 견딜 힘을 얻고 있다.